소심한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잘한다?
소심한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잘한다?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3.08.19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민의 Crisis Talk

[더피알=정용민] 이런 말이 있다. “선진국은 사전 예방을 위한 예산을 많이 지출하는데 반해, 후진국은 사후 복구 예산에 돈을 많이 지출한다” 기업 위기관리 경험상 참 정확한 서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이런 큰 다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들의 관점에서 살펴 본다.

사전 예방을 위해서는 우선 기업 내부에서 ‘소심한 확신’이 선행돼야 한다. 이들에게는 ‘만약(what if)’이라는 일관된 소심함이 존재한다. 내부적으로 해당 위기를 두고 평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가능한 모든 대비 태세들을 마련해 갖추는 ‘준비’의 시간을 보낸다.


반면 사후 복구 예산을 주로 지출하는 기업들의 경우 평소 별반 소심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기업들의 경우 ‘해당 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확률적인 반론을 펴기도 한다. 일부 기업들은 ‘매년 사전 예방 예산을 지출하는 것 보다 몇 년 만에 한번 운이 없어 발생할 때 복구 예산으로 지출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것’이라는 경제적 반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단 이런 반론들은 그럴 듯 해 보인다. 아주 논리적이고도 계산적인 것 같다.

앞서 소심한 기업들의 경우 위기로부터 예상되는 부정적 대상들을 순수 예산이나 매출 및 주가 타격과 같은 가시적 자산으로만 꼽지는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브랜드에 대한 생각, 회사 명성, 거래처들과의 관계, 소비자 신뢰, 정부 및 규제기관들과의 관계, 시민단체들과의 입장 등의 훼손을 광범위하게 우려하는 것이다. 이는 비가시적 자산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들에게만 자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이런 소심함은 선진적인 기업들의 경우에만 나타난다.

대범한 기업들의 착각이 낳는 재앙

반대로 사후 복구 예산을 주로 지출하는 기업들은 정확하게 예산, 매출과 주가 같은 가시적인 자산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위기가 발생해도 예산, 매출과 주가에 대한 부정적인 임팩트가 없거나 미미하다면 해당 위기를 내부적으로 위기로 정의하지 않는다. “이번 일이 불미스럽기는 하지만 우리 매출이 떨어지거나 주가가 곤두박질 친 것도 아닌데 왜 예산을 투입해 해당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가?” 반문하기도 한다.

이 기업들이 우려하는 위기는 매출과 주가가 동시에 곤두박질쳐 자사의 생존까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때서야 생존을 위한 사후 복구 또는 사후 관리 예산을 지출한다. 앞서 소심한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관계, 명성, 신뢰 등의 부가적(!) 가치들은 매출과 주가라는 큰 기준을 통해 포괄적으로 이해한다.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오르니 우리들의 명성이나 신뢰는 온전한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혹 일부에서는 이처럼 대범한 기업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논리가 있고 일관성이 있는데 왜 ‘후진적’이라 부르는가 라는 질문도 할 수 있다. 이런 논쟁은 상당히 오래된 논쟁이고 그 논쟁에 있어 핵심은 서로간 관점의 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그러나 대범한 기업들의 현실적인 위기관리 문제들은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로 대범하고 낙관적인 기업들의 경우 준비가 없거나 완전하지 않다. 위기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허둥거리게 되니 더 큰 문제가 된다. 위기 발생 후 막대한 예산을 써도 통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겪게 될 가능성이 이전의 소심한 기업들 보다 훨씬 높다면 한번쯤은 생각 해 볼 일이다.

▲ 맛조개가 바닷물이 들어왔구나 착각하며 갯벌위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 처럼 큰 재앙을 맞는 기업들도 같은 이치에서 착각하기 쉽다.(사진=mbc '아빠 어디가' 방송 화면 캡처)


둘째로는 대범하고 낙관적인 기업들에게는 다른 유사 위기들로부터 평소 반면교사를 찾거나 위기로부터 배우는 환류관리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맛조개의 비유를 들어본다. 서해안에 서식하는 맛조개는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의 대상이다. 맛조개를 잡기 위해 많은 피서객들이 꽃소금 봉지를 들고 갯벌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자. 갯벌 위에 뚫린 구멍 속으로 꽃소금을 솔솔 뿌리면 이내 맛조개는 갯벌위로 고개를 빼꼼 내민다. 소금으로 물이 짜지니 ‘바닷물이 들어 왔구나’ 착각 하는 것이다.

이 착각한 맛조개는 대부분 피서객들의 안주나 찬거리가 된다. 맛조개 입장에서는 이 단순한 착각이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다. 여기서 맛조개들은 다른 맛조개의 착각에 의한 재앙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매번 이들은 반사적으로 착각을 반복한다. 해가 지나도 그 반사적 착각은 멈출 줄을 모른다. 다른 맛조개의 재앙으로부터 배우지 않고, 계속 똑같은 착각들을 하며 줄줄이 재앙을 맞는 셈이다. 대범하고 낙관적으로 위기에 맞서는 기업들의 경우에도 이 맛조개들과 무엇이 다른지 한번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전 예방이냐 사후 복구냐 예산의 딜레마

셋째, 실제 사후 평가를 해보면 대부분 사전 예방 예산보다 사후 복구 예산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업 위기에 있어 사후 복구 전에 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생산시설이나 비즈니스 자산들이 손실되고, 중장기적으로 여러 소송 비용들이 발생되는 경우들을 모두 포함해야 사후 복구 예산이 결산된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지난 2010년 급가속 사고와 대량 리콜로 차량 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미국 소비자 2200만명에게 16억달러(1조8000억원)를 보상해야 한다는 미국 법원의 판결을 2013년에 받았다. 알려진 바로는 미국 역대 자동차 관련 집단소송 합의금 중 최대규모다.

아무리 대범한 기업들도 이런 수준의 사후 복구 예산을 감당하는 데는 부담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류의 사후 복구 예산이 이 하나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리 예방하고 준비한다면 사후 복구 예산을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기업 내부의 확신이 절실한 이유다.

대범하고 낙관적인 기업들은 위기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져 스스로 면역력이 생기기도 한다. 위기를 준비한다는 의미와 위기에 면역이 된다는 의미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작년에 겪은 위기를 올해 또 겪게 되고, 몇 년 후에 또 유사한 위기가 반복되다 보면 사후관리 방식이나 태도에도 면역력이 생겨버린다.

일부 정부기관들이 국정조사를 통해 지적 받는 여러 중요한 문제점들을 확실하게 개선하기보다는 하나의 반복적인 통과의례로 여겨 면역력을 강화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중장기적으로 이런 위기에 대한 조직 내 면역력은 회사의 비즈니스 연속성을 저해하는 가장 위험한 기업문화로 자리잡게 돼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작전을 세울 때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겁쟁이가 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불리한 조건을 과장해보고 끊임없이 ‘만약에’라는 질문을 되풀이한다.” 기업들의 위기관리 자세와 전략에 있어서도 나폴레옹의 이 같은 조언은 큰 가르침을 준다. 기업들에게 대범하지 말라거나 낙관적이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대한 가능한 사전 예방과 준비를 다 한 후에 대범하고 낙관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야 진정한 대범하고 낙관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