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센터 없이 손발에 의지하는 위기관리 시스템
통제센터 없이 손발에 의지하는 위기관리 시스템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2.11.0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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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The PR=정용민] 구미에서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언론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은 단순 화학원료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았다. 며칠 흐르고 나니 사고 당시 누출된 가스가 상당히 위험한 화학물질이라는 것이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역에서의 피해사례가 속속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이번 위기는 세 가지 질문에 기반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불산 가스라는 화학물질 관련사고 전례가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불산 가스관련 사고들이 작은 규모지만 수차례 발생했었다. 심지어 구미의 해당 업체에서도 몇 년 전 불산 가스 유출로 직원이 부상한 전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체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방지책조차 보유하지 않았다.

둘째, 위해물을 다루는 해당업체나 지역 재난방지 주체들이 불산 가스 관련사고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고 발생 형태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일단 발생 형태가 예측 가능했다면, 당연히 그 발생가능 지역인 공장내부에는 적절한 사고 대응 장비나 자재들이 구비되어 있어야 했다. 또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지역 재난방지주체들은 사고 확산 방지책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가 완료돼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불산 가스 사고라는 것을 전제로 한 재난대응체계에서는 어떠한 준비성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셋째, 예측되는 불산 가스 관련 사고에 적절한 해결책을 알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불산 가스를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소석회를 배포해 중화작업과 확산을 최소화해야한다. 분명 해당 화학물질을 다루는 업체라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정보였다. 또한 지역 내에 불산 가스를 취급하는 업체가 존재하고 있기에, 지역 재난방지주체들 역시 당연 인지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에 적절한 해결책인 ‘소석회’ 준비는 상당 시간이 흐른 뒤 구미시에 의해 준비돼 사후약방문 수준에 그쳤다.

▲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포도농장에 '식용불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번 불산 가스 누출사고는 예측이 가능했고, 실제 발생 형태에 대한 인지도 가능했었던 위기다. 더불어 그에 적절한 해결책 또한 이미 상식적으로 공유되었던 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업체나 지역 재난방지 주체들은 재난 대비나 상황관리 활동 전개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뭘까?

생산 시설에서의 사고 발생의 경우 제1차적 위기관리 주체는 해당 기업이다. 해당 기업은 일반적으로 ‘사고 예방 및 관리 매뉴얼’을 보유하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실제로 사고방지 교육 등을 실시하고 일부는 사고 시 상황관리 연습 또한 실시하는 게 정상이다.

그 다음 2차 위기관리 주체는 해당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위기나, 이번 사고와 같이 상당 수준 위해성이 있는 사고의 경우 위기관리 리더십을 쥐게 되는 주체다. 일반적으로 소방서, 지역정부, 관련안전기관, 경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평소에도 법으로 규정된 안전 설비나 대비수준을 점검하고 계도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마지막 3차 위기관리주체는 중앙정부다. 더 세부적으로 재난방재청이나 사고 관련 감독 정부 부처들이 되겠다. 이번 불산 가스 사고에서는 환경부가 주로 그 역할에 해당했다. 해당 사고가 국가재난에 해당하는 수준으로까지 확산이 되면 이는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체계 하에 들어가 전 정부적인 지원이나 개입이 시작된다.

위기관리 통제센터는 상황 지역 인근에 세워져야

문제는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가 위기의 규모와 범위 그리고 발생 이후 시계열적 구조로 위기관리 주체를 편성해 놓았다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위기를 관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위기관리통제센터의 역할을 사고 발생 직후부터 릴레이 형식으로 주고받는다는 데에서 전문성 논란, 책임소재논란 그리고 시간지연의 고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역 소규모 공장의 일반 화재사고 경우에까지, 1차·2차·3차 위기관리 주체들이 모여들어 소란을 떨 필요는 없다. 또 평소에도 그렇지만 사공이 많다고 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빨리 나간다는 법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일선에서의 CI(Commander’s Intent), 즉 지휘관 의도(指揮官意圖)에 의지할 수 있도록 일선 위기관리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일선 위기관리 담당자들이 현장에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가장 빨리 대응할 수 있는 그룹이므로 이들의 경험과 감각에 의지하는 것이 성공적 위기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불산 가스 누출 사고 시 이러한 CI(지휘관 의도)에 의지하는 위기관리 체계는 또 다른 문제들을 초래했다. 1차와 2차 위기관리주체인 일선 재난관리 기관들의 지휘관들이 각자 다른 판정을 내리고, 잘못된 전문성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각기 상황관리 활동을 벌여 결과적으로 불산 가스의 확산과 주민들의 피해를 더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1차와 2차 위기관리 주체들이 하나의 통합된 위기관리 통제센터를 만들어 각자의 전문성과 대응 활동들을 협업 형식을 통해 실행에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주체가 위기통제센터의 협업과정을 리드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일선에서의 대부분의 협업 실패는 이런 리더십 부재가 주된 이유가 된다.

리더십 부재가 위기를 키운다

서로 통제를 주거나 받지 않는 이질적 전문그룹들이 단시간에 모여 하나의 리더십 하에 편제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상적 개념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사고 관리를 위해 추대된 위기통제센터의 리더가 협의 지시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는 해당 협업주체들이 각자 져야한다는 한계도 있다. 예산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부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위기통제센터는 여러 기관들이 장시간 협의를 거치고, 최고위층의 인가를 받아 세워질 수밖에 없고, 이런 과정에 물리적 시간 소요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전문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전담기관이 평소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관의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지역적으로 파견 또는 배치돼 있어야 한다. 사건이나 사고, 위기 발생 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위기관리 전담기관 전문가들이 파견되는 형식이다. 해당 위기의 특수성에 따라 적절한 전문성과 경험이 있는 위기관리 전문가가 1차와 2차 위기관리 주체들의 협업과 통합적 의사결정을 리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소방관들의 일선 CI에만 주로 의지해서는 이번과 같은 특수하고 복합적인 위기에는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소방방재기능에 좀 더 전문성을 심어주자 하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국가와 지역 차원의 위기관리 전담조직 아이디어와 결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위기관리 통제센터의 기능은 지역주민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주민이 자신의 삶과 터전인 지역의 안전에 더욱 더 경각심을 가지고 지역 소재 기업들과 기관, 더 나아가 지역정부와 중앙정부에 대비책 마련을 상시 요구해야 한다. 지역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지역주민들이 위기발생 이전에 위기관리 통제센터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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