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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이다’답답한 현실 속 어설픈 위로·고상한 가르침 거절…세대 공존 해법 찾을 때
승인 2016.12.08  09:37:32
조성미 기자  | dazzling@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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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조성미 기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몇 해 전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베스트셀러 책이다.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를 향해 ‘다 아프면서 크는 것’이란 다독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몇 년 만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오히려 따지고 든다. 청춘은 왜 꼭 아파야만 하느냐고.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이 지난해 9월 ‘힐링캠프’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자기 일을 즐겨라, 즐기는 자를 못 따라간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성과를 낸다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직설이었다. 그는 어릴 적 농구를 정말 좋아했지만 책임감을 느끼고 난 후부터는 단 한 번도 즐겨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농구를 전쟁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야만 했다고도 말했다.

서장훈의 말에 공감하는 이들은 즐긴다는 것은 스스로가 성취하는 기쁨 중 하나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즐기라’는 말은 그저 달콤한 속삭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말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요즘 젊은 세대는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격언에 거부감을 느낀다. 꿈과 환상을 담은 이상적인 말도, 듣기 좋은 꽃노래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탓이다. 대신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사이다화법’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이야기한다.

   
▲ ‘자기 일을 즐겨라’는 말이 가장 싫었다고 말한 서장훈. 방송화면 캡처

이같은 변화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눈치 보고 남을 의식하는 체면문화가 강했던 기성세대가 정제된 화법을 선호한 것에 반해, 디지털·온라인 등 다양한 소통 구조를 경험하고 학습하고 이용한 청년들은 개성을 강조하고 표출하는 특성이 있어 서로 다른 화법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며 “세대마다 태어나서 자라나고 또 사회화 되는 과정 속에서 각각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길거리 토크 버스킹쇼 JTBC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조승연 작가는 콘텐츠 홍수의 방어기제로 이를 바라봤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좋은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방어본능이 생겼다”며 “예전에 ‘시적전율’이라고 하던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는 말을 이제는 ‘오글거린다’ ‘닭살돋는다’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좋은 말’도 옛 성인의 격언처럼 진지하게 하기 보다는 실생활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게 된 하나의 이유인 셈이다.

격언, ‘생활언어’의 옷을 입다

‘격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면서 주목받은 사람이 개그맨 박명수다. 그는 ‘시작은 반이다’란 말에 ‘시작은 시작일 뿐’이라고 응수하고, ‘내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비아냥거림에는 ‘알았으면 제발 미리 말을 해줘라’고 대꾸한다. 또 ‘내일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오늘 할 필요 없다’ 등과 같이 기존 격언들을 조금씩 비틀어 공감과 함께 웃음을 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현재 청년들의 생활을 좀 더 반영한 것이 바로 ‘유병재 어록’이다. ‘젊음’에 강요되는 인내와 희생의 말을 비틀어 위트 있게 반박하는 형태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나 예능 등에서 했던 말들이 누군가에 의해 정리돼 회자되고 있다.

‘나만 힘든 건 아니지만 니가 더 힘든 걸 안다고 내가 안 힘든 것도 아니다’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아니, 무슨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등이다.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2016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공감할 만한 촌철살인의 메시지다. 최근엔 이같은 어록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더해져 ‘짤’로 공유되기도 한다.

   
▲ ‘유병재 어록’을 SNL코리아에 출연했던 그의 모습과 합성해 만든 짤. 티빙 페이스북

70~80년대 계몽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그림체에 ‘개처럼 일해야지’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적힌 이미지와 진짜 책 표지로 착각할 만한 패러디물 ‘그 많던 월급은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은 디지털 내러티브 세대의 콘텐츠 소비방식에 맞게 유머를 담아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비슷한 선상에서 디자인 상품인 ‘바른생활 큰 표어’도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는 열심히 일해 ‘빛’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와 빚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서며, ‘내힘으로 졸업하여 자랑스런 자식되자’와 같은 문구는 대학생을 타깃으로 열심히 공부할 동기를 재미나게 전달한다.

이 제품을 디자인한 김현미 산돌티움 디자이너는 “옛날 벽면에 붙어있던 국가보안, 가족계획 표어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시대 변화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가 달라진 만큼 현재 상황에 맞춰 문구를 새롭게 기획했다”고 밝혔다. ‘오고가는 언쟁속에 싹트는 아이디어’란 표어는 서로 의견을 말하기 조심스러워하는 회의실의 무거운 분위기에 사이다를 투척하기 위한 것이다. 싸워도 좋으니 제발 말 좀 하라는 의미로 멱살잡이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광고업계의 페이스북 대나무숲인 ‘내가광고회사힘들다그랬잖아’의 경우 ‘사랑에 빠진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이란 의미의 신조어 ‘lovelylove’를 활용한 신조어짤을 만들기도 했다. 회의를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회의ly회의’, 퇴근시간인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퇴근ly퇴근’, 월급이 나오지만 한 번도 만질 수 없는 ‘월급ly월급’ 등 다양한 예시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표현했다.

   
▲ 직장인의 현실을 담아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는 짤(온라인 커뮤니티)과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을 반영한 산돌티움의 ‘바른생활 큰 표어’.

청년의 돌직구, 세상을 바꿀까

온라인을 중심으로 각광받는 사이다 화법은 단순히 재미와 자기위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포장은 유쾌해도 씁쓸한 현실을 담아내는 ‘웃픈’ 이야기들인 만큼 때로 세상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대표적인 것이 ‘남의 집 귀한 자식’으로 대표되는 ‘을의 외침’이다.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난해에는 서비스를 받는 이들과 제공자 사이의 감정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러면서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다는 이들과 잘못된 것을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합의를 이뤘다.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르바이트생들이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근무하는 모습이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화제가 된 이것은 만약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가족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들게 하는 함축적인 문구였다. 실제로 이 셔츠를 도입한 식당의 점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례한 손님이 70%로 줄었고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유사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는 ‘님도 우리도 모두 귀한자식, 귀한 사람들끼리 귀히 해줍시다’라는 포스터를 붙여놓았으며, 또 다른 카페는 ‘반말로 주문하심 반말로 주문받음’이란 액자를 두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 편의점의 절대수칙’이란 제목의 사진에서는 편의점주가 ‘부당한 고객에겐 절대 머리를 숙이지 말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수칙에서는 ‘손님이 왕인 시간은 사장인 내가 근무할 때 뿐’이라며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경찰신고 및 맞대응도 가능하다고 적어뒀다.

   
▲ 약자의 위치에 있던 알바생들이 돌직구 화법으로 소소한 반기를 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조작이라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다. 사장님 마인드가 좋다고 칭찬하는 한편, 원래 저렇게 근무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지금의 알바들이 가혹하게 힘든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해당 게시물이 실제든 그렇지 않든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을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크게 공감 받은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관통하는 직구화법에 대해 이병훈 교수는 “더 많은 공부를 하고 투자를 했음에도 사회 진출에는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절박함과 어려움이 담긴 것”이라며 “내 코가 석자이기에 좋은 격언이나 고상한 말보다는 불투명한 미래와 다급한 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사회를 이끌고 책임지는 이들이 청년세대에 해법을 주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기에, 이제는 ‘꼰대짓’이 아니라 청년들의 (사이다식) 표현을 이해하고 세대가 함께 공존하고 연대해야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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