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매뉴얼에 생명력 불어넣는 법
위기관리 매뉴얼에 생명력 불어넣는 법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3.11.25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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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더피알=정용민] 기업이나 정부에게 위기가 발생하면 많은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위기관리 매뉴얼의 부재’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래서인지 기업 경영진들은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어야 위기관리 체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경영진들이 가지는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가치의 핵심은 ‘심리적 안정감’으로 보인다. 회사 직원들이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면서 나름 많은 고민들을 하고, 체계를 돌아보았으니,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때문인지 실무그룹들은 경영진들을 위해 위기관리 매뉴얼의 분량과 부피를 극대화 하려는 노력들을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모든 위기 유형에 맞추어 세부 대응안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라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실무 그룹들의 생각은 어떨까?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해 경영진들이 가진 것과 같은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에게 자사의 위기관리 매뉴얼 보유 사실을 설명하며 잠시 홍보목적의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무자들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신뢰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믿음이 없다기보다는 ‘좀 찜찜하다’는 느낌들이 많은 것이다. 왜 그럴까?

실무그룹들은 일선에서 위기관리 업무를 해본 경험들이 있고, 앞으로 위기관리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처음 위기관리 경험을 했을 때에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보고 이에 따라 대응 했다기보다 부서의 경험과 본능들을 가지고 대응 했었다. 이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위기대응 경험 때문에 이후 만들어진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들을 보이곤 한다. 한마디로 “매뉴얼대로 해서 위기관리가 되는 줄 알아?”하는 생각이다.

또 실무그룹들은 위기관리 매뉴얼의 비현실성과 두리뭉실함에 대해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너무 정형화 되어 있어서, 그때 그때 대응을 달리해야 하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들을 종종 표현한다.

일부는 “불이 났다고 칩시다. 위기관리 매뉴얼에서는 ‘불을 정해진 담당자들이 최단시간 내에 꺼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근데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고 불을 세부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꺼지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하면서 답답해한다. 백과사전 분량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두고도 그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에 목말라 하는 것이다.

위기관리 매뉴얼 수명은 6개월~1년

기업 경영진들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심리적 안정’의 도구로, 실무자 그룹들은 ‘경영자들을 위한 보고 문건’으로 간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실에서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위기관리 매뉴얼’을 찾지 않고 다시 종전의 단발적 위기대응으로 이어지는 이유들이 대부분 이 때문이다. 놀랍게도 많은 기업들이 위기 시 위기관리 매뉴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쓸모없다는 의견이 팽배한 위기관리 매뉴얼의 딜레마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일단 기업이 만들어 둔 위기관리 매뉴얼의 수명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수명이란 최초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경영진들과 위기관리 실무그룹들에게 브리핑 해 그들이 어느 정도 매뉴얼 윤곽을 기억하고 매뉴얼 존재를 기억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매뉴얼의 실제 수명은 6개월에서 1년을 채 넘지 못한다. 실무자들이 바뀌고, 팀장들과 임원들이 바뀐다. 새롭게 자리가 바뀐 직원들은 위기관리 매뉴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흔히 “우리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라는 것이 있었어? 그걸 어떤 부서에서 만들었지?”하는 이야기들을 사내에서 하곤 하는데 이 때문이다.

기존 위기관리 매뉴얼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 위기관리 실무그룹들은 정기적으로 매뉴얼에 기반한 위기관리 훈련과 시뮬레이션을 경험해야 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기업들이 따르고 있는 아주 당연한 기업 위기관리 체계와 프로세스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가만히 놓아두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짧은 생명력을 가진다. 그렇다고 실무자들이 매일 매일 보고 묵상하고 반복 학습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 내 위기관리 역할과 책임을 가진 위기관리 매니저 그룹들이 리드해서 진행하는 정기 훈련과 시뮬레이션은 위기관리 체계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해당 훈련과 시뮬레이션은 ‘위기관리 매뉴얼’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에 기반하지 않는 훈련과 시뮬레이션은 마치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자칫하다가는 일선의 본능과 직관에 의한 경험들을 강화 발전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위기관리 훈련과 시뮬레이션은 기본적으로 기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현실적인 검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실제적 위기상황을 설정해 전사적으로 기존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위기 대응 업무들을 실행해 보는 것이 핵심이다.

정기적 업데이트가 매뉴얼 강화 기본

이를 통해 위기관리 매뉴얼상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면 이 또한 이상적인 결과다. 발견된 문제점들을 개선해 위기관리 매뉴얼을 수정하면 된다. 미처 기존 위기관리 매뉴얼에 수록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기유형이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 해 보고 그 결과를 분석해 기존 위기관리 매뉴얼을 강화할 수도 있다.

지속 검증되고 수정되고 업데이트 되어 강화된 위기관리 매뉴얼보다 효과적인 기업 위기관리 체계가 없다. 이런 류의 매뉴얼은 ‘공식 문서’의 의미를 넘어 ‘전사적으로 체득화된 위기대응의 뼈대’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경영진을 비롯한 위기관리 그룹들은 정기적인 위기관리 매뉴얼 기반 훈련과 시뮬레이션들을 통해 실질적 경험도 가지게 된다. 이는 비단 개인적 자신감을 넘어 조직적인 믿음으로 까지 발현된다.

점차 이 과정이 지속되면 실무그룹들에서는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불신과 불만들이 줄어들게 된다. 훈련과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의견들을 개진하게 된다. 그 의견들은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리를 거쳐 위기관리 매뉴얼을 강화하는 밑거름이 된다. 스스로 만들어 운용하는 진짜 매뉴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경영진들은 기존 가졌던 막연한 ‘안정감’보다는 더욱 강력한 ‘신뢰감’을 가지게 된다. 위기관리 조직과 역량에 대한 신뢰감이 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위기관리 매뉴얼을 믿습니까?”라고 직원들에게 물어보자. 지금 보유하고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진짜 믿고 신뢰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돌아보자.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찜찜함이 있다면 그것은 위기관리 매뉴얼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더욱 정확하게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관리하는 방식과 전사적 위기관리 체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경영진들과 실무 그룹들에게 신뢰와 자신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위기관리는 실행이다. 빨리 실행하자.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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