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왜곡의 산물, 추억의 우량아 대회
미디어 왜곡의 산물, 추억의 우량아 대회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3.11.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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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잘못된 미디어 정보·이미지…부지불식간 건강 해쳐

[더피알=유현재] 우리나라의 대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사전을 통해 ‘우량아 선발대회’를 검색해보면, ‘과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기관과 각 방송사가 후원하고 분유업계 등에서 활발하게 개최했던 이벤트였다’는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로 뜸해졌으며, 88올림픽 이후엔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내용도 덧붙여 나온다.

우량아 대회가 이젠 추억이 돼버린 것이다. 웃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당시 우량아 선발대회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 방송사가 중계할 만큼 국민 관심이 높았으며, 전국 각지에서 ‘개월 수에 비해 한 덩치 하는 크고 우람한’ 아이들이 엄마들과 함께 전파를 탔다.

▲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과거, 미디어가 만들어서 보여주는 우량아 선발대회의 이미지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우량아’로 포장됐다. 사진은 당시 우량아 심사 현장. ⓒ뉴시스

더욱 놀라운 것은 고(故) 육영수 여사가 마련한 청와대 모임에 초대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량아 선발대회가 얼마나 국가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은 행사였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모유수유만이 유일한 육아법이던 우리나라에 분유를 판매하는 기업이 최대 규모의 우량아 대회를 후원함으로써 이후 분유열풍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알려진다.

이런 우량아 선발대회에 출전, 수상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건강검진 절차도 통과해야 했다. 신체검사를 넘어 의료진이 직접 아이를 살펴보는 엄격한 과정도 거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실제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소위 ‘큰’ 아이들이 대체로 타이틀을 거머쥔 것으로 파악된다. 건강을 상징하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실상 몸무게가 개월 수에 비해 유독 많이 나가는 아이들이 우량아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당시, 미디어가 만들어서 보여주는 우량아 선발대회의 이미지에 의해 ‘건강한 아기=우량아’가 아니라,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우량아’로 포장돼 왜곡된 채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그렇게 고착화된 이미지는 지금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우량아 대회에 나가야 겠다”는 덕담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몸무게 많이 나가는 아기가 건강하다?

비만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그 시절, 우리들은 유독 살이 오른 아이들을 무조건 건강한 아이라 믿으며 의심치 않았다. 미디어에서도 그렇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동안 왜곡돼 받아들여졌던 건강한 아기에 대한 정의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의미로 업그레이드돼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사실은, 건강한 아기일 가능성보다는 영양과잉 또는 일부이긴 하지만 질환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과거 우량아 선발대회를 대신하는 대회가 최근 미디어를 통해 자주 소개되고 있다. ‘모유만 먹는 아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가 그것이다. 모유는 아이에게 필요한 필수 영양성분들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더욱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건강한 아이를 선발하는 다양한 대회들이 미디어에 의해 소개되고 있으며, 과거 우량아 선발대회와는 상이한 기준으로 ‘왕중왕 아기’를 뽑고 있다.

▲ 과거 우량아 선발대회를 대신하는 대회가 최근엔 ‘모유만 먹는 아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로 대신해 소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제9회 강북구 모유수유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모유수유아와 그 엄마. ⓒ뉴시스

대체로 생후 4-6개월 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본 대회는 몸무게를 포함한 신체적 지수들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 의사들의 건강 체크와 함께 실제로 모유수유를 하는 과정도 평가의 일부로 삼는다고 보도되고 있다. 현재 약 32% 수준인 모유수유를 더욱 대중화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계획된 전략적 행사인 것이다.

사실 미디어에 의해 왜곡, 제공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건강 개선에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들은 과거에도 또 지금에도 자주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당연한 것처럼 별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우리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심해야 할’ 미디어 콘텐츠들이 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고의 위암 발병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식습관은 짜고 매운 자극성 있는 음식들의 대중적 섭취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문가들도 일제히 인정하고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매일 방영되는 TV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는 오늘도 ‘짜고 맵고 자극성 있는’ 음식들로 가득한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 짜고 맵고 자극성 있는 음식을 배부를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 모습은 너무나 흔한 그림이며, 출연자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엄지를 치켜세우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식욕을 자극하게 만든다.

자살·음주·성형 부추기는 미디어 상업성

이같은 프로그램에 노출된 대중들은 “잘 먹는 것이 보약”이라든가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등의 합리화 과정을 거쳐, 맛있는 음식과 자극성 있는 음식이 동의어가 되는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때쯤 되면 위암을 걱정하던 건강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다.

미디어가 전하는 자살사건 보도도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이미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미디어의 베르테르 효과 등에 대해 보도하던 미디어들도 일단 유명 연예인의 자살사건이 발생할 경우, 탐사보도 수준으로 자살의 정황과 장소 및 방법 등을 너무나 상세히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비단 실제 자살보도 뿐만이 아니다. 한 동안 공백기를 갖던 연예인들은 복귀를 갈망하는 입장을 전하며, 예전 침체기 때 자살을 생각했다거나 기도한 적이 있다며, 마치 자살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가감없이 풍기는 프로그램들도 허다하다.

음주 또한 왜곡된 이미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드라마 속 괴로워하는 인물들의 상당수는 현 상황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술을 찾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틀림없이 청소년들이 시청할 수 있는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의 가장 쉬운 해결책은 술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성형 관련 프로그램은 가뜩이나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형 일반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농후하다.

‘삶 자체가 변했다’는 등의 메시지로 가득한 성형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면, 그동안 별 불만 없었던 나의 외모에도 슬슬 불만이 생기면서 예뻐지는 데에 성형이 필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적으로 든다. 마치 그 옛날 미디어의 선택권이 너무나 부족할 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던 우량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서서히 각인되듯 말이다.

2013년을 사는 우리들도 미디어가 상업적으로 만들어내는 ‘건강을 위협하는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분별 있고 비판적인 미디어 소비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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