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적, 하수인 그리고 대변인
사기꾼, 적, 하수인 그리고 대변인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3.09.19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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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더피알=정용민] 외부 전문가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업에 따라 또는 실무자들의 경험 등에 따라 다양하다. 생각보다 많은 기업 실무자들은 외부 전문가 그룹에 대해 긍정보다는 부정적 느낌을 강하게 표출한다. 외부 전문가들은 왜 기업 실무자들에게 이런 느낌을 주었을까? 이런 평소의 부정적인 인식이 위기관리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고자 한다.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업 실무자들이 가지는 주된 인식들을 꼽아보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외부 전문가를 ‘사기꾼’으로 간주하는 인식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기업 홍보실에게 위기관리란 ‘부정적인 기사나 보도를 막는 것’이라는 정의가 존재해 왔다.

반면 해외 선진 기업들과 같이 기업 홍보실이 자사 위기관리에 있어서 사전 진단, 예방, 대비, 완화 업무를 리드하는 위기관리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현실적 이유들로 간과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불이 붙으면 불을 끄는 역할에 충실한 ‘소방수’ 위기관리 역할론이 현재까지도 일부 존재하는 데 이런 현실이 외부 전문가그룹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일조했다.

위기관리에 있어 홍보실은 외부 전문가 그룹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들이 전문가라고 하는데 우리 홍보실보다 출입기자들을 잘 아는가? 사회부 기자들에 대한 네트워킹이 우리보다 강한가? TV 고발 프로그램을 저지할 수 있나?”하는 소방수 역할을 문의하는 것이다. 당연히 연간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예산을 활용하는 기업 홍보실의 소방수 역할을 이겨낼 수 있는 외부 전문가 그룹이 많지 않다.

이런 인식을 가진 기업 홍보실은 “쳇, 자기들이 전문가라면 우리가 원하거나 우리가 하기 힘든 일을 깨끗이 처리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일도 못하면서 무슨 전문가야?”하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 기반해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이다.

두 번째 유형은 외부 전문가를 ‘경쟁자 또는 적(enemy)’로 간주하는 인식이다. 이런 인식의 기저에는 홍보실장의 경쟁심과 부서 보호본능이 깔려 있다. “우리 홍보실에만 해도 여러 명이 있고, 예산도 큰 액수를 쓰고 있는데 왜 위기관리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나?”하는 최고경영진들의 지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홍보실에서는 가능한 외부 전문가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 CEO나 일부 핵심 부서들이 별도로 외부 전문가를 고용하게 되면 홍보실이 그 전문가들에게 적대심을 표현하는 경우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아무리 사내적으로 ‘전사적 위기관리 체계 구축’이라는 명분이 공유돼 있어도 홍보실은 그에 충실하게 협조하지 않는 수동적 입장을 보인다.

심지어 “평생 회사에서 홍보업무를 해온 우리 이야기는 듣지 않으시면서, 외부에서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한마디 하면 그에 대해서는 신의 목소리처럼 떠받드시니 문제야”라는 불평들도 종종 한다. 마치 외부에서 온 저 전문가들이 우리 홍보실과 비교돼 최고경영자들에게 인식될까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이 또한 조직 내에서의 생존본능에 관한 것이니 무시할 수는 없다.

외부전문가를 바라보는 홍보실의 ‘동상이몽’

세 번째 인식은 외부 전문가들을 ‘하수인 또는 일용직’으로 보는 타입이다. “우리 부서에서 예산을 만들어 당신들을 고용했으니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하는 유형이다. 대부분 이런 기업 홍보실의 경우 위기관리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일종의 허드렛일(?)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지시한다. 많은 시간소요, 인력 등 품이 많이 들고, 결과물도 위기관리에 있어 큰 영향이 없는 업무를 하청 형식으로 외부 전문가들에게 부여하는 셈이다. 위기관리 매뉴얼 개발 작업이 대표적이다.

어차피 위기관리 매뉴얼이라는 것이 최고경영자 일부가 경쟁사 등 대형 위기를 목격하고 “우리도 위기관리 매뉴얼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내부 지시에 의한 개발 업무인 경우가 많다. 사내에서 해당 매뉴얼에 대한 관심도 적고, 딱히 전문성을 가진 부서도 없어, 사후 결과물만 보고하면 될 뿐 활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경우들이다. 외부 전문가를 써서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 지시하신 분이 원하는 시간에 보고하는 것이 곧 성공의 기준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예산으로 해당 업무를 신속히 마무리 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를 구합니다”라는 경쟁비딩을 주재하는 기업이 이런 경우다. 조직 내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업무 방식에 관련된 인식이니 이 또한 별로 특이한 것은 아니다.

네 번째는 외부 전문가들을 ‘대변인(spokesperson)’으로 간주하는 타입이다. 실무자뿐만 아니라 홍보부서장이 자신들의 의견과 이야기를 최고경영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형식이다. 보통 이들은 외부 전문가들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표님을 비롯 최고경영자 그룹들이 위기 시에 너무 언론에만 집중하십니다. 저희는 사실 이해관계자들을 폭 넓게 커버해야 하는 역할이 힘든데, 주로 기사나 보도에만 신경 쓰시고 다른 NGO나 정부 규제 기관 등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으셔 문제입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 대한 여론 감정도 별로 좋지 않으셔서 저희가 중간에서 참 힘듭니다” 일종의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자문 요청 기저에는 외부 전문가들로 하여금 ‘핵심 주제에 대해 우리 최고경영자들의 인식을 개선시켜 줬으면 합니다’라는 주문이 들어 있다. 사내에서 위기관리를 진행 해 나가면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여러 장애물들과 문제점들을 외부 전문가의 입을 빌어 완화 또는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 이 같은 기업들은 위기관리에 대한 사내 정의(definition)가 기존 소방수의 역할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확장되어 있는 타입들이다. 또한 실무자들과 홍보부서장이 내부 전문가로서 어느 정도 위기관리 체계상의 문제점들을 올바로 파악하고 있는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마지막 단계에서 최고경영자들에게 최종 프리젠테이션 할 때 보면 이런 류의 기업 홍보실은 티가 난다. 자신들이 최고경영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문제점 과 제안들을 그대로 외부 전문가의 논리를 통해 구조화시켜 놓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 후반에 나올 수밖에 없는 CEO의 질문에 대비되어 있다.

“홍보실장, 이 컨설턴트들이 지적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대안이 있는가?”라 질문하실 때 이렇게 답변한다. “네, 저희가 이미 그 문제를 인지하고 대비책과 보완책을 마련해 올해 초부터 부서 내부적으로 준비 작업을 해왔습니다. 예산부분과 추가 지원 몇 가지만 가능해지면 다음 달까지는 개선 업무를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미리 준비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곧 최고경영진은 우리 홍보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게 마련이다. 외부 전문가를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활용하는 기업 홍보실은 영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부 전문가에 대한 인식 진화할 때

외부 전문가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어떤 인식이 더 나은 인식이고 어떤 것이 저급한 인식이라고 딱 잘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회사마다 홍보실의 권한과 업무 수준이 다르다. 기업 경영 철학과 문화가 다르고, 사내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다르니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가에 대해서도 각자에게 기준이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향후 회사의 진화에 따라 지속가능성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 그룹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과 의사의 비유를 들어보면 더욱 이해가 쉽다. 60-70년대만 해도 병원에는 참을 수 없이 아플 때만 찾아가는 곳이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을 때 가는 곳이었다. 의사는 내가 죽어간다 생각했을 때 찾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건강에 대한 정의와 인식이 전혀 달라졌다. 지금은 딱히 어디가 아프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는다. 어떻게 하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지 의사에게 찾아가 묻는다.

외부 전문가들을 바라보는 인식을 중장기적으로 ‘배척과 경계’의 시각에서 ‘접근과 활용’이라는 인식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진화는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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