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0대 老 기자의 하소연
어느 60대 老 기자의 하소연
  • 김광태 (doin4087@hanmail.net)
  • 승인 2013.07.01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광태의 홍보 一心

[더피알=김광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의 상처가 더 크고 깊은 법이다. 떨어질 때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고 은퇴하게 되면 얼마만큼 품위 있게 내려오느냐가 중요해진다. 내리막길엔 명예도 내려놓으라는 말이 있다. 현재 입고 있는 옷은 언젠가는 벗어야 할 유니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더군다나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산 언론인 출신 경우에는….

젊은 시절 한때 특종 기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나이든 노(老)기자께서 어느 날 소주 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다. 올해 나이 66세. 아직도 현역으로 뛴다. 조그만 인터넷 언론사 대표다. 젊었을 때 그 어렵다는 유력 신문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해 많은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던 분이다. 특히 경제부 기자로서 활약할 때 금융계에선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한번 걸리면 그의 기사는 한마디로 촌철살인(寸鐵殺人)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존심에 강한 상처를 입고 미련 없이 사표를 내던지고 신문사를 나온다. 그로부터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한두 개 중견 신문사를 비롯해 몇몇 인터넷 언론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젊은 날 술고래로도 소문 난 기자였지만 지금은 술로 인해 건강을 해쳐 거의 안한다. 그런 분이 술 한 잔 하자고 전화가 왔으니 뭔 일이 있긴 있었다.

술자리에서 소주 두 잔에 취기가 오르자 “여보게, 김 전무요! 내가 내리막길을 품위 있게 내려오고 싶었는데 세상인심 고약해서 손 좀 보려 하네….” 이젠 그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오로지 상대 약점만 들춰내는 기사만 쓰겠다는 것이었다. 평소 후배들에게 “기자는 오로지 자존심으로 살고 정의와 대의를 위해 뛴다”고 가르쳤던 그였다. 필시 뭔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 것일 터.

그는 좋은 기사에는 반응이 없고 오로지 나쁜 기사에만 반응을 보이는 홍보의 현 세태가 실망스럽고, 한물간 기자라고 푸대접 하는 홍보인들의 태도 또한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그 옛날 숱하게 자신에게 신세를 진 홍보인들이 많은데 하나같이 이름 없는 매체라 외면하고, 전화해도 회신이 없고, 어느 경우엔 거지 취급까지 해 정말 맘 같아서는 어디 가볼 데까지 가보자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 공격적으로 상대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봤더니 생전 콜백도 안하던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오고 찾아와선 온갖 아양을 떨면서 봐달라고 했단다. 어느 경우에는 “광고 때문에 그러시죠? 도와드릴 테니까 기사 좀 내려주시죠” 하면서 액수까지 흥정을 하면서 돈으로 해결하자고 했다고.

게다가 “이젠 나이도 드실 만큼 드셨고 손주 재롱 보실 땐데…”라는 핀잔 아닌 핀잔까지 덧붙일 땐 화를 꾹 참고 속으로 ‘그래 넌, 나이 안 먹냐? 나이는 먹는 게 아니고 거듭나는 것이야’라고 응수해보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에 젖어드는 인간적 상실감은 감내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그래도 옛날엔 기자와 홍보사이에 따끈따끈한 인간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주고받는 거래 관계만 존재 한다고 했다.

혹시 몇 살까지 기자생활 하실 거냐는 질문에 그는 기자가 무슨 정년이 있느냐며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하겠다고 한다. 기자생활에 후회 해본 적이 없느냐는 질문엔 학창시절의 꿈도 기자였고 지금까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자를 천직으로 살고 있기에 단 한 번도 후회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란 원래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사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홍보인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졌더니 기자들은 돈 보단 명예와 의리를 중시 하는데, 홍보인들은 을의 관계로 살아서 그런지 실리 추구가 강해 마음을 이어 가는 오랜 지기는 거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리면 비로소 늙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따라 노기자 모습에서 평소에 찾아 볼 수 없는 쇠약함이 보였다. 헤어져 돌아선 뒷어깨도 유난히 축 늘어져 있었다. 세상사 오늘 핀 꽃은 어제의 꽃이 아니련만…



김광태

온전한커뮤니케이션 회장
서강대 언론대학원 겸임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