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맨 가슴에 묻어둔 그리운 얼굴들
홍보맨 가슴에 묻어둔 그리운 얼굴들
  • 김광태 (doin4087@hanmail.net)
  • 승인 2013.03.06 11: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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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의 홍보 一心

[더피알=김광태] 추억만큼 나누기 좋은 게 또 있을까. 그러나 나눌 상대가 이 세상에 없다면….

지난달 초, 그룹 울랄라세션 리더 임윤택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날이다. 홍보 일선에서 만나 근 30년 지기인 유모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문사 편집국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현재는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였다. 늘 그리운 얼굴로 한번 만나보고 싶던 터.

반가운 마음에 소주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자고 했더니 “아니, 내가 나갈 형편은 못되고…”라는 평소 애주가답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말끝을 흐리면서 마지못해 나온 말이 “사실 지금 나 병원에 입원해 있어…”다. 워낙 건장한 체구에다가 평소 건강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였던 그라 믿어지질 않았다. “묻지 말고 시간되면 한번 들려.” 그러면서 병실 호수를 알려 주곤 전화를 끊는 게 아닌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와 절친한 후배에게 곧바로 전화를 했다. “유 국장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는데 어디 아파?” “아니요, 쇄골이 아파 물리 치료 받고 있는데? 1주일 전에도 둘이 술도 세게 마셨는데…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뇨?” 바로 알아보겠노라고 하더니 곧장 다시 연락이 왔다. 청천벽력의 말. ‘폐암’이란다.

순간 갑자기 지난 날 가슴에 묻어둔 두 얼굴이 떠올랐다. 홍보맨인 내게 가슴 깊은 상처를 남기고 요절한 언론인 두 사람. 37세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조선일보 모태준 기자와 52세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등진 평화방송 문세종 기자다.

모태준 기자는 조선일보 과학전문기자로 입사해 처음으로 나와 동유럽 해외 취재를 같이 했던 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갓 입사한 탓에 기자라기보다는 상아탑 학생티가 줄줄 흘렀다. 당시 그의 장난끼 어린 행동과 천진난만한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름동안 정말 우린 형과 아우가 되어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쌓았다.

그를 다시 만난 건 5년 뒤였다. 내가 그룹 홍보를 떠나 삼성전자 홍보팀으로 가면서였다. 그때 그의 모습은 피곤에 매우 찌들어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가 든다며 폭음을 자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는 술만 먹고 나면 속이 쓰리다면서 위장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걱정이 돼 병원에 가보라고 해도 의사가 위염 증상이 있다고 술만 좀 줄이면 된다고 했단다. 그래도 한 번 큰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몇 차례나 권했지만, 결국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심한 통증이 와서야 대학 병원에 갔다.

검진 결과 위암 말기로 판정이 났다. 방사선 치료를 하며 치료에 열중했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치료 3개월 만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7살, 9살 두 딸만 남긴 채 꽃다운 3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절한 또 한 사람, 평화방송 문세종 기자는 죽기 직전까지 미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일경제에서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 삼성을 출입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는데, 정말 술 한 잔의 낭만을 아는 멋진 친구였다.

서로가 낭만파라 술자리에선 그야말로 죽이 척 맞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늘 술에 취해 “형님, 제수 보고 싶지 않아요? 제수 술 한 잔 받고 싶으시죠? 아우가 꼭 해드려야 하는데…”하면서 결혼 못한 섭섭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워낙 감성이 풍부한 친구라 항상 현실보다는 꿈을 동경했다. 그래서 문화예술쪽에 관심이 많았고 ‘평화방송’으로 자리를 옮겨 그가 원하던 문화부에서 뜻을 이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도 무심하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는 ‘급성폐렴’으로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믿어지지 않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라디오 전파를 타고 내 귓속을 맴돌고 있다.

인생무상.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을 남기지만 가까운 인연과의 영원한 이별은 영혼에 주름을 남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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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 2013-04-03 11:50:49
글을 읽다보니 아련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