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홍보 1세대’의 마감과 ‘가판 신문’의 추억
‘기업홍보 1세대’의 마감과 ‘가판 신문’의 추억
  • 김광태 (doin4087@hanmail.net)
  • 승인 2013.02.05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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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의 홍보 一心

[더피알=김광태] 최근 각 기업의 홍보임원 인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인사에서 LG 정상국 부사장을 비롯해 금호아시아나 장성지 부사장 등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서 활약한 임원들이 대거 일선에서 물러났다. 70년대 말 삼성 이순동 사장으로부터 시작된 기업홍보 1세대가 이들 퇴임을 끝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기업에서 홍보의 틀을 세워 놓은 첫 세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기업홍보’의 창시자로서 이뤄놓은 수많은 업적은 아마도 한국 홍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기업홍보 1세대는 아날로그 홍보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아날로그 홍보에 대한 향수가 깊다. 그들에게 아날로그 홍보 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추억의 가판신문’을 떠올린다. 그렇다. 그들에겐 일상이 가판신문이요 거기에 얽힌 애환이 수없이 많다.

공휴일도 없이 매일 저녁 7시 넘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가판신문. 그날의 홍보팀 성적표다. 그에 따라 홍보맨들은 매일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래서 배달부가 신문을 가져 오는 그 순간에 늘 긴장하고 가슴을 졸인다. 오늘 활동에 대한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신문을 펼쳐 든다. 다행히도 아무 일 없고 좋은 기사만 크게 나왔으면 ‘천당’이다. 절로 신바람이 난다. 휘파람을 불며 퇴근길에 술한잔이다. 포장마차에서의 소주 한잔이나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잔은 정말 달콤하다. ‘쨘’하고 잔을 부딪치며 단숨에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면 그 날의 모든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역시 홍보는 바로 이 맛이야”. 홍보맨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쾌감, 저녁 술자리. 그 맛에 취해 술자리는 어느새 2차 3차로 이어진다. 그래도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문제기사가 발견이 되는 날은 바로 ‘지옥’이다. 앞이 깜깜해진다. 새벽 시내 배달판이 나올 때까지 비상이다. 담당 기자를 수소문하고 데스크를 만나러 신문사로 출동한다. 원하는 대로 기사가 고쳐지든가 빠진다든가 아무튼 마지막 판까지 뭔가는 노력한 흔적을 내놔야 한다. 피가 마를 정도로 마지막 시간까지 기사와 싸운다. 마침내 최종 인쇄본이 나온다. 결실이 맺어 졌으면 ‘야호!’다. 한숨 돌린다. 그런데 노력한 보람도 없이 아무런 결실이 없으면 아침 출근길이 죽음이다.

이렇듯 매일 같이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 오가며 홍보 인생 대부분을 보낸 세대. 그 세대가 ‘가판신문세대’ ‘아날로그 홍보세대’로 일컫는 기업홍보 1세대다. 몸과 마음의 동병상련. 그러기에 홍보1세대 홍보맨들 간에는 우애가 깊고 공유하는 추억도 많다. 그런 세대이기에 현업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쉽다.

그 모든 발자취가 자신도 모르게 애장품이 됐다. 그런 선배 앞에서 어떤 철없는(?) 후배는 아날로그 홍보는 한마디로 “술 먹고 기사 빼는 거”라든지, “선배님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젠 은퇴할 나이도 되셨고 할 만큼 하셨잖아요?”라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로 선배의 비위를 건드린다. 영혼이 없는 디지털 세대라 그런지….

디지털이 우리 일상생활에 가져다주는 편리함.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넘치면 넘칠수록 우리 인간의 영혼은 상대적으로 황폐해져간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날로그 용품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양초 시장의 경우 계속 커져 지난해 24억달러(약 2조5300억원) 어치가 판매됐다고 한다.

LP판도 부활해 재생산 되고 있다. LP로 듣는 음악과 디지털 CD로 듣는 음악은 큰 차이가 있다. LP로 음악을 들으면 음과영의 차이가 뚜렷해 깊이가 있고 음악의 혼이 살아 있어 따뜻하다. 그러나 디지털 CD음은 차갑고 정직하다. 잡음을 없애기 위해 일정 음역대로 주파수를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혼이 빠져 생명력을 잃은 불구의 음인 것이다.

홍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이다. 무엇보다 따뜻한 품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 시대. 따뜻한 마음이나 과거 경험이 무시되기 싶다. 문자에 치중한 홍보도 홍보지만 기업홍보 1세대 선배들이 쌓아놓은 입과 눈의 스킨십, 아날로그 홍보도 존중하고 이어가야 한다. 아날로그 옛날 용품이 부활하듯 언제 어느 때 어떤 경쟁력으로 다가설지 모를 일이다.



김광태

온전한커뮤니케이션 회장
前 삼성전자 홍보 담당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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