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만 빼고 모두 변한 게 문제다
기업만 빼고 모두 변한 게 문제다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2.05.07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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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자신이 입사했을 때 있었던 많은 것들과 주변 사람들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더 밖을 내다보자. 소비자도 더 이상 그 때의 소비자가 아니다. 규제기관이나 NGO들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 이미 변화했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고, 거래처, 공장이나 지점 주변의 커뮤니티들도 느리지만 변해갔다. 특히 미디어는 더 빨리 어지럽게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기업들에게 ‘종편’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생소한 단어였다. ‘블로그’나 ‘트위터’ ‘유튜브’라는 개념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페이스북’이 다가왔고, ‘핀터레스트’나 ‘카카오톡’이 밀려와 회사주변을 맴돌고 있다.


얼굴을 마주보던 시장에서 이제는 모니터를 마주보는 시장이 돼 버렸다. 마케터들은 점점 더 소비자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기회들이 줄어드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홍보담당자는 기존 출입기자와 기울이던 술자리를 줄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더 많고 다양한 일에 새로 손을 대야만 살아남게 됐다.

영업담당자들은 언제든 소비자들의 컴플레인이 즉시 공공화 되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생산담당자 또한 좀더 신중하게 원재료와 품질, 안전, 위생관리를 해야 한다는 압력에 힘들어 하고 있다. 이렇듯 많은 기업 내 담당자들도 바뀌어 가고 있다.

하루 단위였던 위기대응 타이밍, 이제는 분 단위로

최근 수년간의 많은 기업 위기 케이스들을 보자. 예전에는 그렇게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 자그마한 해프닝들이 큰 위기로 폭발하는 사례들을 반복해서 목격할 수 있다. 이해관계자들은 조그마한 해프닝에도 예전보다 더욱 경악하고 분노하고 쟁점을 만들어 서로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 구성원의 말 한마디, 잠깐 동안의 행동, 얼굴의 표정까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와 기업에게 압력으로 작용한다.

시간적인 변화도 기억하자. 하루 한번 신문 인쇄만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전 미국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만 해도 속보는 오랜 시간이 지나 신문사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칠판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유됐다. 영화관에 가야 생생한(?) 세계 대전 전투 속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TV가 발명되면서 그나마 시민들은 비교적 빠른 소식을 접하게 됐다.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 신문과 저녁 방송을 보면서 위기를 관리했었다. 따라서 기업의 위기대응은 하루 정도 내에만 진행되면 별 이상 없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위기관리의 지옥’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예전 하루 단위였던 위기대응 타이밍이 이제는 분 단위까지 짧아졌다. 하루 종일, 기술적으로도 24시간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해야 겨우 ‘발생한 위기를 놓쳤다’라는 핀잔을 듣지 않게 되었다. 수명을 2~3일 정도 가지는 소규모 롱테일 위기들이 한 달에도 몇 개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외부환경이 빠르고 다이나믹 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다른 일상 업무를 하는 부서들은 더더욱 ‘위기관리’를 특정 부서가 도맡아 해야 하는 특수 업무로 인식하게 됐다. 한마디로 이해도 안되고, 적응도 힘들고, 관리하기는 더더욱 싫은 업무라서다.

우리의 위기관리 체계는 어떤가?

이렇게 많은 환경요소들과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그 접점에 있는 실무담당자들이 변했다. 반면 기업 체계 자체를 한번 들여다 보자. 지난 10년과 위기관리 시스템(체계)에서 어떤 진화들이 있었나?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통상적 위기들에 대한 매너리즘 속에서만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케팅이나 영업이나 IT부문 심지어 HR부문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나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그에 따른 체계를 가다듬는 벤치마킹을 한다. 이를 기반으로 기존의 체계를 환경에 맞춰 점차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을 한다. 다시 한번 묻자. 우리의 위기관리 체계는 어떤가?

소비자들의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컴플레인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전략적일까? 예를 들어 우리 제품과 관련해 치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동영상을 올려 전세계적으로 유통시키는 유튜브 공중들과 NGO들이 있다면 이는 어떻게 관리할까? 파워블로거라 평가 받는 유명인이 신랄하게 포스팅 해 놓은 우리 제품의 부정적인 평가들에 우리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맞을까?

트위터상에서 자신들의 ‘소비자 불만’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전파하고 시청을 부추기는 방송사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우리 제품등과 관련 해 핀터레스트에 마구 올라가는 괴상한 사진들에는 아무 대응이 필요 없을까? 페이스북에서 여럿과 마구 싸우고 있는 우리 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공장 뒷동산 산맥을 휘젓고 다니는 모 방송사 탐사보도팀에게는 어떤 반응이 알맞을까?

기업 위기관리 체계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우리도 몰랐던 사내 보유 고객정보들이 줄줄이 새나가고, 해킹을 맞아 길거리에서 유통되는 이 상황을 CEO와 임원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고 대응하자 해야 하나? 우리의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목적으로 마구 만들어 놓은 300~400개의 브랜드 소셜미디어 채널들은 모두 어떻게 감독 관제 할 것인가? 일부 브랜드 트위터 운영자의 재기 발랄함을 넘어 북한을 찬양하거나 민족의 비극을 희화하는 애드립을 하는데 이를 기업 입장에서는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또 저 무서운 내부고발자들은 어쩔 건가? 어떤 체계를 가지고 대응 할 것인가?

기업 위기관리 체계 전반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아직도 기업 내부에는 상호소통의 동맥경화가 남아있다. 부서 이기주의와 정치적 대립과 견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일선에서는 언더 리포팅 하고 상부에서는 오버해 추측한다. 아직도 기자들이나 PD들이 취재를 해 오면 아무나 맘대로 답변해버린다. CEO께서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으로 소비자와 말다툼을 하신다.

직원들이 소셜상에서 몰려다니거나, 때론 아닌 체 모른 체하면서 몰래 문제를 일으킨다. 사내에 변변한 위기관리 위원회도 제대로 없고, 위기관리 매뉴얼은 야근 때 라면 받침으로만 사용한다. 윗분들은 언론기사를 막고 빼듯이 모든 것을 다 빼서 없애 버리라 주문하신다. 위기관리 체계는 별로 진화하지 않았다.

환경과 이해관계자들과 실무자들은 변해가는 데 기업 위기관리 전반의 체계화는 온데간데 없다. 대부분의 위기관리가 단편적으로 행해지고, 실무자들에 의지해 단순대응에만 머무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기업내의 위기관리 체계가 빨리 진화해야 한다. 환경이나 이해관계자들 보다 기업의 체계와 실무자들의 역량이 더 빨리 변화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해가 쨍쨍 찌는 여름날 우산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변과 우리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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