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소통(疏通), 공감(共感)이 키워드
2012년은 소통(疏通), 공감(共感)이 키워드
  • admin (admin@the-pr.co.kr)
  • 승인 2012.01.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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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의 通通마컴


한 해를 정리하면서 매년 교수신문은 그 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2011년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이 선정되었습니다. 엄이도종은 ‘자신의 나쁜 일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엄이도종 선정 배경에는 정부의 독선적인 정책과 소통부족이 원인이라고 교수신문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신년 미디어들을 보니 대부분이 소통(疏通)과 공감(共感)을 올해의 키워드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치르는 나라가 58개국이라고 하니 소통과 공감이 어찌 중요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작년 유투브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영상 중의 하나가 쌍둥이 아가들의 옹알이였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받은 이 동영상은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기저기(귀저기가 아닙니다)를 찬 아가 둘이 서로의 옹알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인데 기가 막히게 서로 주고 받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통할까 생각하지만 그 둘은 아무 불편 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동식물도 인간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기의 언어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인간의 아집을 깨는 것이어서 다들 공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의사소통(communication)에 대한 글을 쓰면서 국내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개막한 애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한 옹알스팀에 대한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팀의 이름이 말해주듯 올알스는 Babbling(어린아이 옹알이를 뜻하는 말) 코미디란 쟝르의 말이 필요없는 퍼포먼스 위주의 코미디였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영국의 관객들에게 우리의 언어와 문화로는 그들을 설득하기 어렵고 더욱이 웃게 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내 언어와 문화가 아닌 옹알이(넌 버벌)처럼 각종 액션(퍼포먼스)만을 통해 그들을 웃게 만들고 성공해 영국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두 옹알이의 사례에서 우리는 소통, 의사소통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소통(疏通)’ 이란 말의 뜻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또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하여 막히거나 오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뜻을 통해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통의 제 1 도구가 입으로 하는 말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옹알이는 우리가 아는 상식인 단어나 말이 아니어도 그들의 뜻을 잘 주고 받습니다. 작은 미물이라고 생각하는 동식물까지도 말입니다.

더 나아가 “의사소통(意思疏通)”은 사람의 의사나 감정의 소통으로 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이 커뮤니케이션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상대와 서로 통한다는 것으로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입니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말(口)이나 글(文)뿐만 아니라 몸짓, 자세, 표정, 억양(에딘디버러의 옹알스처럼) 등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까지 포함됩니다. 이 의사소통의 요소들 중에서 옹알이와 같이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도 다른 비언어적인 요소로 의사소통을 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엄이도종”과 같은 사자성어가 올해의 키워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언어적인 의사소통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의사소통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한 홍보, 연설, 강의 등등을 잘하면 의사소통을 잘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온라인을 통한 소통이 의사소통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말할 때마다 예로 드는 "메라비언의 법칙"도 제 생각과 같은 내용입니다. 심리학자인 앨버트 메라비언박사가 주장한 이 법칙은 사람이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내용이 7%, 목소리가 38%, 표정 35% 그리고 태도가2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즉 말은 겨우 7%이고 태도나 표정 등 상대가 느끼는 감성적 요소로 자기의 뜻이 전달되는 넌버벌 커뮤니케이션, 비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사전적 의미처럼 말이 통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언어적 요소에 충실하지 말고 비언어적인 요소에 충실해서 하라는 진리인 것입니다.

이제 잘하는 커뮤니케이션,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불통이라고 느끼셨던 원인이 무엇이 때문인가도 스스로 판단이 되실 겁니다.

국가를 통치한다는 지도자들의 소통을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언론에서 이명박대통령과 박근혜 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간의 소통에 대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에 비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간의 불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다른 세상인 화성과 금성 그리고 다른 성별인 남자와 여자간의 근본적인 사고 방식의 차이 때문에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어 각기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불통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또한 뜻을 통하려는 진심(비언어적인 표현)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이는 집권당인 여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야당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의사소통법은 무엇일까요? 2012년 벽두에 다시금 정리해 올해는 통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언어, 같은 문자, 같은 사람이라는 분들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이 엄이도종을 만들어 냈습니다. 만약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다른 상대였다면 그 불통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한 그동안 귀로만 말을 들으려 했지 마음을 열고 진정한 뜻의 소통을 하려는 노력들이 부족했다고 반성을 해야 합니다.

잘하는 커뮤니케이션, 통하는 의사소통법은 스스로에게 진솔하고 자기의 귀를 통한 것이 아니고 또한 내 머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려는 경청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상대에게 진솔하지 못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면서 상대에게는 그렇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입니다.

말이 통하려면 몇 번 지속적으로 하면 됩니다. 하지만 뜻이 통하려면 10번이고 100번이고 상대가 내 진심을 알아줄 때까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나의 지위, 나의 배움, 나의 가짐 등으로 인해 나 중심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는 금성 여자이고 나는 화성 남자 인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내 뜻이 바로 통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위, 나의 지식, 나의 가짐을 먼저 내려 놓아야 합니다. 먼저 나의 장벽을 쳐 놓고 그 장벽에 가두게 된다면 그들만의 리그로 통하고 그들만의 세상에서만 통하게 될 것입니다.

2012년에는 “옹알이 대화법”, 즉 지금까지 배우고 알았던 말의 표현이 아니라 메라비언의 법칙처럼 그리고 순수한 아가들이 마음처럼 서로의 뜻을 헤아리려는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으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2012년은 통하는 한 해기 되어 모두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 원 섭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전략수립 컨설팅 전문회사 IMS Korea 대표 컨설턴트
블로그 : “ 이원섭의 通하는 마케팅, 通하는 커뮤니케이션”
http://space4u.egloos.com, http://blog.naver.com/wonsim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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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도 2012-01-02 14:33:39
먼저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상대방을,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공감이 이루어질 수 있고 공감이 이루어져야 소통이 뒤따르겠지요. 단순히 동일한 언어의 반복보다는 욕심, 이기심, 집단 이기주의 같은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한다면 손짓, 몸짓만으로도 충분한 소통이 될 것입니다.

김형도 2012-01-02 14:28:16
언어이든 몸짓이든 약속된 심볼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100% 일치하지 않는다면 100%의 공감도 소통도 이루어 지기 어렵겠지요. 같은 "말(言)"을 두고도 두 사람이 해석하는 뜻이 다르다면 공감은 물론 소통도 될리가 만무하지요.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두사람이 자라온 문화, 사화적 환경의 차이뿐만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의 차이에도 그 원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