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연인’들이 연출하는 황혼의 아름다움
‘백발의 연인’들이 연출하는 황혼의 아름다움
  • 최영택 (admin@the-pr.co.kr)
  • 승인 2011.12.0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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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택의 PR3.0

서울 시내에서 노란 은행잎 단풍이 제일 화려한 곳 중 하나가 남산공원 산책길이고 남산순환도로변이 아닌가 싶다. 이젠 그 풍성했던 은행잎도 길바닥에 다 떨어져 앙상한 줄기만을 보이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하고 쓸쓸한 계절의 전환점에 서서 인생의 황혼기를 비유해 본다. 의학의 발달과 삶의 질이 높아져 인생의 황혼기도 60대에서 70대로 높아지고 있다. 불과 30년 전인 1980년만 해도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이 65.7세였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1980년 65.7세에서 2009년 80.5세로 15년 가까이 길어졌으며, 남성의 평균수명은 76세, 여성의 평균수명은 83세라고 한다. 통계청에서는 2050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이 83세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은퇴 후에 적어도 20~30년을 부부가 함께 보내야 하는 황혼기에 대한 준비를 미리 미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업별 평균수명 조사에서 종교인이 80세로 가장 높고 기업인이 73세로 4위, 언론인이 67세로 가장 낮은데 PR인, 홍보인들의 평균수명은 가운데쯤인 70세로 잡으면 될까? 그렇다면 홍보인들의 황혼기는 60대인 셈이다.

홍보인 황혼기는 60대, 평균수명 70세?

얼마 전 모 방송의 ‘인간극장’이란 코너에서 다룬 ‘백발의 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의 시선을 잡았다. 강원도 횡성에 사는 94세 할아버지와 87세 할머니 부부 이야기인데 그 나이에 아직도 정정하고 함께 손잡고 걷고, 서로가 위해 주는 게 아직도 신혼이고 금슬이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모든 농사일을 도맡아 하며 밤에 잘 때 부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자고, 금슬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남자가 잘해야지요”라며 여자가 잘못하면 타이르고 여자 건사가 남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말씨가 아직도 소녀이고 할아버지가 곁에 없으면 찾아 나서며, 부엌에서 고무대야에 앉은 할아버지 목욕도 시켜주고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잘해 주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는 말이 전혀 가식이 없어 보인다.

그런 노부부가 툇마루에서 손을 잡고 다정히 앉아 “우리 남은 생을 서로 돕고 재미나게 삽시다”는 마지막 멘트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인생의 황혼기를 넘겼는데도, 생의 마감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서도 또 12명의 자식 중 6명을 병으로 잃고서도 항상 웃으며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황혼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는 이 나이에도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는 데 대한 반성을 해 본다.

평균수명은 길어지고 은퇴시기는 빨라지면서 직장인들의 은퇴 후 생활이 점점 문제가 되고 있다. 마음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미처 준비되지 않은 탓에 제2의 인생, 자영업, 취미 등을 나열하며 친구들과 등산과 바둑에,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요리나 제빵, 바리스타, 붓글씨 같은 학원에 등록하는 이는 실천력이 강한 편이다. 은퇴 후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청소, 빨래, 요리 등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았던 남편과 이런 남편을 돌보아야 하는 부인간 갈등현상도 많아지고 있다. 평생을 몸 바쳐서 가족을 먹여 살렸건만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부인은 평생 아이들을 키웠건만 이제 남편까지 돌봐야 하는지를 푸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10명 중 7명 이상이 평균수명이 길어지면 늙은 남편을 돌보는 부담이 커지면서 부부 간 갈등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자녀 수가 줄어들어 오래 사는 부모의 부양 문제로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항목에도 전체 응답자의 77.0%가 동의했다. 현재의 50~60대는 위로는 부모를 봉양했지만 아래로는 자식들의 부양을 받기는커녕 결혼할 때 집까지 마련해줘야 하는 낀 세대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20~40세대와 50~60세대의 갈등과 세대차이를 느끼면서 은퇴세대는 청년실업과 부의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보듬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은퇴 후 30년의 생활을 유지할 자금과 취미활동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집안일 돌보미 역할도 은퇴 전부터 하나씩 연습해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홍보출신 남편이 만드는 아름다운 황혼은…

12월은 송년모임과 새해 사업전략을 구상하는 달인 동시에 기업의 임원인사시즌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평가서를 써내고 마음조리며 퇴임이냐 연임이냐 혹은 승진이냐가 판가름 나며 어느 날 조용히 통보 받고 짐을 싸거나, 자리를 유지하거나 혹은 방안이 축하 난(蘭)으로 가득 차는 셋 중의 하나가 결정된다. 그 해 실적이 좋은 임원은 별 걱정 없이 지나가기도 하나 임원인사는 인사위원회 평가를 거치지만 그야말로 오너의 결정사항이며 발표를 하루 앞두고 바뀌는 사례도 보아온 터라 아직도 남의 일 같지 않다. PR담당 임원의 경우도 영업과 같이 수치로 평가 받거나 긍정적 실적에 의해 평가 받기 보다는 부정적 이슈에 대한 대처와 오너와의 관계, 후임자 등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아 마음 조리며 인사발표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보통 한 두 달 전에 식사나 골프약속, 송년모임 등을 잡아 놓는 홍보임원들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일정잡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SNS, 종편 등 미디어도 많아지고 홍보도 이젠 전문분야이므로 친분이 있는 홍보임원들이 모두 연임 또는 승진되기를 기원하며, 만의 하나 통보를 받더라도 그 동안 술과 압력에 지친 마음과 몸을 추스르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라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 들이고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후 멋진 황혼, 아름다운 황혼을 설계하길 바란다. 앞만 보고 브레이크도 없이 달려 온 인생이기에 부인과 자식들에게도 신경 쓰지 못하고 매일 밤 늦은 귀가와 이른 출근에 주말도 골프사역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홍보임원의 현주소다.

벌어 놓은 것이 없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눈을 한 단계 낮추고 그 동안 쌓아 온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작지만 보람 있는 일을 찾아보면 눈에 뜨인다. 자식과 손주들 돌보는 것도 책임과 의무이지만 마지막에 함께 하는 이는 아내다. 황혼이혼이라는 단어도, 젖은 낙엽 남편이라는 은유도 남편이 가정에서 역할에 충실하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들이다. 황금빛 저녁노을 받으며 호숫가 벤치에, 시골집 마루에 손을 잡고 나란히 걸터 앉아 추억을 얘기하는 ‘백발의 연인’들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황혼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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