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과 미디어렙… 그 복잡한 함수관계
종편과 미디어렙… 그 복잡한 함수관계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 승인 2011.09.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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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미디어오늘 경제팀장

민영 미디어렙은 오래된 뜨거운 감자다. 미디어렙은 광고 판매 대행사를 말한다.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독점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허용한 게 2008년 11월의 일이다. 헌재가 2009년 12월까지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는 의견 대립만 계속되고 있다. 방송사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데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금까지는 코바코가 광고 단가를 일률적으로 책정하면서 취약 방송사들 광고까지 묶어서 끼워팔기를 해왔기 때문에 광고주 입장에서는 정작 광고를 내보내고 싶은 시간대에 내보내기 어렵거나 광고를 내고 싶지 않은 프로그램에 울며겨자먹기로 덤으로 광고를 내보내는 경우도 감수해야 했다. 만약 코바코의 독점 체제가 무너지면 좀 더 많은 광고비를 내더라도 효과가 높은 시간대에 압축적으로 광고를 집행할 수 있게 된다.

2006년 기준으로 코바코의 광고 판매는 2조1076억 원이었는데 끼워팔기의 비율이 지역민방은 광고 매출의 35.6%, 종교방송은 90% 수준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한국광고주협회 조사에 따르면 끼워팔기가 전체 광고 판매의 11~13%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이후 2007년까지 코바코가 끼워팔기 형태로 판매한 광고가 3조7천억 원을 웃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1공영 1민영·1공영 복수민영·완전 경쟁…

민영 미디어렙을 둘러싼 논의의 첫 번째 쟁점은 MBC를 공영 미디어렙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민영 미디어렙에 넣을 것인가다. 두 번째 쟁점은 올해 하반기에 출범할 종합편성채널을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다. 세 번째 쟁점은 민영 미디어렙을 몇 개나 허용할 것인가다. 네 번째 쟁점은 지역민방과 종교방송 등 지금까지 코바코 시스템의 혜택을 받아왔던 군소 취약 방송사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다.

문제는 MBC와 SBS가 코바코에서 빠져나갈 경우 취약 방송사들을 지원할 재원이 줄어들게 된다는 데 있다. 너도 나도 빠져 나가고 나면 누가 코바코의 역할을 할 것인가. 전체적으로 방송광고의 파이가 커진다고 하지만 종편까지 진출해 경쟁이 심화되면 공영 미디어렙의 파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광고 물량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취약 방송사들에게 배정하는 광고 할당제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KBS와 MBC를 지금처럼 코바코에 광고 판매를 위탁하도록 하고 종편은 새로 설립될 미디어렙에 위탁하도록 하는 이른바 1공영 1민영 체제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당론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한선교 의원이 MBC를 민영으로 내보내는 1공영 복수민영을 주장하고 이정현 의원이 공영과 민영 구분 없이 완전 경쟁 체제로 가자고 주장하는 등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1공영 1민영 체제는 사실상 코바코를 둘로 쪼개는 방식이나 마찬가지라 경쟁 원리를 도입한다는 당초 취지에서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각각의 영역에서 독점이 보장되는 2개의 코바코가 생기는 셈이다. 1공영 복수민영 체제는 민영 미디어렙 사이에 경쟁을 활성화하는 측면이 있지만 공영 미디어렙의 외형 축소가 불가피하다. 교차 판매를 허용하는 완전 경쟁 체제는 경쟁 효과는 가장 크지만 과당 경쟁과 공공성 위축이 우려된다.

그동안 코바코가 광고 단가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의 광고 단가는 시장 가치보다 낮게, 끼워팔기로 판매되는 광고의 단가는 시장 가치보다 높게 책정돼 왔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은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방송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방송의 보도·제작과 광고 영업을 분리해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취약 방송사들을 지원해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된다. 이를 테면 시청 점유율이 30%인 프로그램에 붙는 광고의 시장 가치가 2천만 원인데 코바코가 제시하는 가격이 1500만 원인 경우가 있고 시청 점유율이 5%인 프로그램 광고의 시장 가치는 500만 원인데 코바코는 1천만 원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광고주들은 가격 대비 효과가 큰 인기 프로그램으로 몰릴 텐데 코바코는 이들 광고를 묶어서 패키지 판매를 해왔다.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종편, 광고 직접 판매 돌입…‘특혜’ 논란

지금까지 방송사들은 시청 점유율과 광고 매출이 직접적으로 연동되지 않기 때문에 실적 압박이 크지 않았지만 완전 경쟁 체제가 되고 시청 점유율에 따라 광고 단가가 등락을 거듭하게 되면 본격적인 시청 점유율 경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종편 출범 이후 경쟁이 격화되면 선정적인 프로그램들이 범람하고 그 과정에서 공익적 성격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무더기로 폐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C는 1공영 복수민영 방식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영 방송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나서지 못하고 SBS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민영 방송인 SBS가 드러내놓고 민영 미디어렙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이처럼 방송사들이 개별적으로 민영 미디어렙을 설립해 광고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할 경우 자본의 방송 지배로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종편 사업자들도 중요한 변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은 미디어렙 논의와 무관하게 이미 광고 직접 판매에 돌입한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발목이 잡혀 있는 가운데 종편의 광고 직접 판매를 방치한다면 이는 엄청난 특혜가 된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의도적으로 미디어렙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종편 역시 미디어렙에 포함시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광고 직접 판매를 하는 보도전문채널 YTN의 경우 광고 단가가 지상파 보다 30% 가까이 높게 책정돼 있다. 지상파와 유선방송 채널의 광고 단가는 시청 점유율 1% 기준으로 986억 원, YTN은 1278억 원 수준이다. 만약 종편이 신문의 영향력을 앞세워 광고 직접 판매를 하게 되면 최대 60%까지 광고비가 높게 책정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광고주를 압박하는 신문의 영업 형태가 그대로 방송으로 옮겨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종편의 광고 직접 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애초에 조중동매의 종편 진출에 우호적이었던 한나라당은 다른 유선방송 채널 사업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유선방송 가입자가 이미 전체 가구의 85%를 넘어선 상황이라 종편의 영향력은 지상파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종편에게만 광고 직접 판매가 허용되면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영 미디어렙은 지상파와 종편, 지역민방과 종교방송, 광고주들의 수익과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방향은 공정한 경쟁을 활성화하고 전체 광고시장의 파이를 키우되 취약 방송사들을 지원할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방송시장 전체가 과열 경쟁으로 치닫게 될 우려가 있다. 규제 완화는 불가피하지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고민이 필요할 때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경제팀장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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