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vs 통신사
방송사 vs 통신사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 승인 2011.06.0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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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 건 ‘황금 주파수’ 쟁탈전

 “황금 주파수에 앞으로 10년이 달렸다.” 통신회사들이 주파수 확보에 사활을 걸고 덤비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휴 주파수 대역 경매를 서두르고 있다. 통신회사들 입장에서 주파수는 장사 밑천이다. 얼마나 좋은 주파수를 잡느냐에 따라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

문제는 지상파 방송사들 역시 주파수를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2년 12월 31일 이후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마무리 되면 남는 주파수를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에서는 이 주파수 대역이 천문학적인 금액에 팔려나간 바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막대한 재정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방송사들 입장에서는 살을 떼어 주는 심정일 것으로 보인다.

매물로 나올 주파수 대역은 3G(세대) 통신 영역인 2.1GHz 대역에서 20MHz 폭과 KT가 2G 서비스에 사용하다가 반납하게 될 1.8GHz 대역 20MHz, 그리고 방송사들이 쓰고 있는 700MHz 대역 108MHz 폭이다. 주파수 문제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방송 주파수를 통신사들에게 넘겨주는 게 옳은가. 둘째, 주파수를 단순히 경매 방식으로 팔아치우는 게 바람직한가. 셋째, 통신사들의 독과점 구조가 계속돼도 좋은가.

첫 번째 쟁점에서 방통위는 일방적으로 통신사들 편을 들고 있다. 당장 네트워크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려면 지상파 방송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파수는 남겨둬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방송사들의 주파수 대역을 지나치게 제한할 경우 자칫 디지털 전환 이후 난시청 지역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각사별 이해관계 첨예하게 대립

방통위 계획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68개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데 38개로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디지털 전환 이후에도 주파수 대역이 남아도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날로그 방송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700MHz 대역을 시범 서비스에 활용했던 것처럼 향후 새로운 방송 서비스를 준비하기 위해 여유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방통위는 디지털 방송은 전송 효율이 높기 때문에 채널을 줄여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사들은 디지털 전환 이후 전송 효율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도심 음영 지역이 많아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채널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인접한 송신소나 중계소는 서로 다른 채널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50개 채널이 지상파 방송사들에 배정돼 있는데 이 보다 최소 10개 이상 채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방통위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 라는 큰 원칙 아래 MMS 도입을 서두르는 것과도 상충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기존 채널을 쪼개 새로운 채널을 만들고 콘텐츠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인데 지상파 직접 수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대부분 가정에서는 유료 방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유료 방송 서비스 가격이 크게 치솟는 추세인데 저소득 계층의 경우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쟁점에서는 통신사들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SK텔레콤은 가입자가 가장 많은 회사에 주파수를 할당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KT는 3G 가입자만 놓고 보면 SK텔레콤과 KT에 큰 차이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주파수가 부족한 회사에 할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3G 대역이 없는 LG U+는 이번에 주파수를 추가 할당 받지 못하면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사생결단의 태도로 매달리고 있다.

통신용으로 사용되는 주파수는 대역이 낮을수록 도달거리가 길고 회절 손실이 적다. 당연히 기지국 설치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과거 2G 서비스에 800MHz 대역을 배정받았던 SK텔레콤이 탄탄한 진입장벽을 구축한 것과 달리 1.8GHz 대역을 배정받았던 KT나 LG U+는 훨씬 더 많은 설비투자를 집행했으면서도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통신회사들 입장에서 700MHz 대역은 그야말로 꿈의 주파수 대역인 셈이다.

가뜩이나 방통위가 “기존의 통신 3사 외에 신규 사업자가 참여할 경우 20MHz 주파수 대역을 우선적으로 할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통신사들을 더욱 긴장하게 하고 있다. 방통위는 우선 2.1GHz와 1.8GHz 대역 각각 20MHz 대역 폭을 동시에 경매에 부칠 계획인데 여기에서 낙오된 통신사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아왔던 SK텔레콤을 경매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세 번째 쟁점에서 주목할 대목은 단순히 주파수 대역을 추가 배정하는 것만으로 통신사들의 트래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강충구 고려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내년 말까지 3162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올해 1월 기준 5496TB였던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2015년이면 4만7914TB로 8.7배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네트워크 용량이 한계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머니 게임’ 으로 변질돼선 안돼

통신회사들의 최근 화두는 ‘롱텀에볼루션(LTE)’이라 불리는 4G(세대) 서비스를 언제 시작할 것이냐다. 아직 2G 서비스도 종료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3G 서비스 주파수 대역이 벌써부터 포화상태에 이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SK텔레콤과 KT가 경쟁적으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해 가뜩이나 부족한 네트워크 자원을 소진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통신회사들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남는 주파수를 모두 끌어다 쓴다고 하더라도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상위 10%의 이용자가 93%의 데이터 트래픽을 소비한다는 통계도 나온 바 있다. 무작정 주파수 대역을 늘리거나 4G 서비스로 전환하는 게 만능 해법이 아니고 와이파이와 펨토셀 등 유선 네트워크를 우회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회사들과 지상파 방송사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단순히 경매 방식으로 유휴 주파수 대역을 배분할 경우 현금 동원 능력이 뛰어난 통신회사가 이를 독차지하고 독과점 구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통신 시장은 음성 통화 기반에서 데이터 트래픽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파수 경매가 머니 게임으로 변질될 경우 후발 사업자의 신규 진입이 원천 차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단순히 남아도는 주파수 대역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데이터 트래픽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를 두고 국가적으로 네트워크 자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망 개방과 중립성 논쟁도 가열되는 분위기다. 제한된 네트워크 자원을 소수의 기업이 독점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통신사업자와 디바이스, 어플리케이션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핵심은 주파수 자원이 제한된 공공의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지상파 방송 영향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지만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네트워크 인프라는 확보돼야 하며 신규 사업자를 비롯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비싸게 부르는 회사에게 넘겨주는 방식, 지난 10년처럼 3개 통신회사가 적당히 나눠먹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경제팀장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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