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모럴해저드 백화점?
대한민국은 모럴해저드 백화점?
  • 최영택 (thepr@the-pr.co.kr)
  • 승인 2011.06.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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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택의 PR 3.0

요즘 부쩍 모럴해저드(Moral Hazard)란 단어를 언론에서 자주 접한다. ‘도덕적 해이’ 를 뜻하는 이 말은 원래 보험시장에서 나왔단다.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의 화재예방 노력을 하나하나 파악할 수 있다면 보험료를 차등 적용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상황하에서는 항상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근로자가 감시가 소홀할 때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의사가 의료보험료를 많이 타내기 위해 과잉진료를 하는 것 등이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또한 예금자가 원리금 상환이 보장되는 예금보호제도를 믿고 경영이 위태롭지만 이자율이 높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거나, 은행이 정부 보증을 믿고 부실기업에 대출해 주는 것 등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이익 추구와 집단이기주의, 국회의 예산낭비 방조, 기업의 고의부도 행위 등이 모두 모럴해저드에 해당하는 것이다.

최근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라고 표현하면 너무 점잖은 표현일까? 저축은행 사주와 경영진의 범죄적 행위에 이를 감독할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아노미(anomie)현상, 즉 사회의 급격한 발전이나 변화에 따라 자기자신의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진 것까지 더해져 총체적인 난국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부실한 건설회사에 PF대출을 남발해 은행 문을 닫음으로써 고객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것도 모자라 영업정지 전날 친인척과 VIP고객들에게 따로 연락해 수백억 원의 예금을 특혜인출했다.

금융당국에서 영업정지 결정 후 영업정지 전까지 빠져나간 돈에 대해서도 검찰은 수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있던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 직원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이를 묵인했다. 한 술 더 떠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은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과 후순위 채권 투자금 전액을 보상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한 데 대해 청와대에서조차 모럴해저드를 야기한다고 비판하니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 역시 저축은행 못지않다. 또 다른 사례로 정부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놓고 고민하며 몸 사리는 사이에 외환은행은 직원들에게 금년 1/4분기 460억원의 특별 성과급을 주었다고 한다. 팔리기 전에 빼먹기 인가?

걱정되는 기업가정신 후퇴

비단 금융기관뿐만이 아니라 기업에도 모럴해저드 행위가 만연하는 등 대한민국은 모럴해저드 백화점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최근 검찰조사에 따르면 오리온그룹 전략담당사장은 그룹 위장계열사로 하여금 3억5000만원짜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차를 리스해 그룹회장과 대표 등에게 제공했고 그룹회장은 이 차량을 자녀통학용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롯데그룹은 출근도 하지 않는 신 모씨(28)를 고문으로 입사시켜 매달 4000만원 이상의 급여를 주고 있다고 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 자녀가 대주주인 비상장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통해 보장받는 일감이 전체 매출의 50%에 육박한다거나, 1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12세 이하 어린이 주식부자가 87명, 100억원 이상 보유한 주식거부가 4명이나 되는 것도 서민들에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친다.

지난 2003년 모 그룹 대주주들은 회사상장으로 큰 이익을 보고도 운영하던 카드회사가 부실해지자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처분해 손실을 회피했지만, 회사는 망해 결국 채권단에 넘어갔고 규정 때문에 주식을 처분하지 못한 임직원들은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MB정권 들어 규제가 풀리자 몇몇 2,3세들은 빵집, 커피집 등 서민형 자영업에 진출해 돈벌이에 나섰다. 대기업 1세대들은 제조업을 통해 돈도 벌고 나라의 부를 축적했지만, 2,3세들은 힘들고 고생하는 제조업보다는 자본력으로 쉽게 돈 버는 유통업, 서비스업, 명품사업을 택한다.

이런 행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창업1세대들이 보였던 기업가정신의 후퇴를 염려하고 있고 최근 들어 대기업 총수문화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한편, 실적 위주의 문화가 남의 희생을 유발한다며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피력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이제는 야단 맞을 때만 임기응변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하라니까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자발적으로 느껴 지속적으로 문화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올해 상장회사에서 100억원 이상 배당 받은 총수만 13명인데 이 가운데 미국 부자들처럼 개인 재산기부를 약속한 총수는 없다. 다만 일부가 자신들이 만든 재단에 출자할 뿐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의 윽박지르기 식 압력이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업들이 벌벌 떠는 모양새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부도 사회공헌도 봉사도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하고 싶을 때 해야 받는 이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지방공기업 성과급잔치, 모럴해저드 극치

지난 4월 LIG건설과 삼부토건 등이 채권단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꼬리 자르기’ 식 법정관리 신청을 했고, 더욱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칠 것을 알면서도 법정관리 신청하기 전이나 증시퇴출 직전에 기업어음(CP) 발행이나 유상증자를 통해 수천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것은 LIG그룹 등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최고조에 달했음을 말해준다는 지적이며, 이는 대기업 오너 일가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보험사들도 분쟁 조정 중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는 가하면 금융당국의 시정권고에도 보험금을 축소 지급한 사례도 있다. 작년에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80.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는 차량운행 증가로 인한 사고 탓도 있지만, 자동차 사고가 나면 병원부터 찾아 눕는 ‘나이롱환자’ 와 사고시 직접 관련이 없는 부품까지 새 것으로 고치는 과잉수리비 문제 등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것도 주 요인이다. 의료부분에서도 재산이 많으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가 되어 보험료를 덜 내거나 경증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찾거나 약제비 과다청구 등도 의료 모럴해저드에 해당한다.

지방공기업의 경우도 만만치 않아 2010년 부채가 46조 3500억 원으로 연간 이자만 1조원이 넘고 자산대비 부채비율이 134.8%에 달하는데도 성과급잔치는 연례행사처럼 이뤄지고 있다. 특히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서울시설관리공단, SH공사, 농수산물공사 등 5개 공기업은 작년 말 기준 부채가 15조 8000억원에 달하는 데도 직원들에게 모두 1257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해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지방재정 악화를 우려해 지방공기업 개혁을 강도 높게 주문했지만 소귀에 경읽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쿄전력의 원전 사고 발생 초기의 부실 대응은 너무 커서 섣불리 손댈 수 없다는 공기업이라는 지위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으며 이것도 일종의 모럴해저드라고 했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할 것 없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사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소위 상위 3%에 속한 사람들의 모럴해저드가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을 모두 초등학교 교실로 데려가 도덕교육을 다시 받게 해야 하는가 싶은데, 교과부는 사회와 도덕과목을 2014년부터 고교 선택과목에서 폐지시킨다고 한다. 내년 대선 때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명예만큼 의무를 다하는)를 실천하게 하며, 스스로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이 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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