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신체는 멀티미디어
인간 신체는 멀티미디어
  • 안홍진 (bushishi@the-pr.co.kr)
  • 승인 2010.05.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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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진의 노뮤니케이션 Nomunication

이번 호에서는 ‘말없는(no saying) 행동의 소통-노뮤니케이션’에 대해 독자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몸, 즉 손·발·얼굴·무릎 등이 모두 미디어다. 나는 이 현상을 몸 미디어(Body Media)라 이름 붙이고 싶다. 그중 얼굴은 다양한 소통을 가능케 해준다. 사람의 얼굴에는 표정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근육이 60개가 있는데 이 얼굴 근육을 이용해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상식적으론 3600가지 정도나 된다고 한다. 변화무쌍한 디스플레이가 가능한 미디어가 바로 얼굴인 것이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나비같이 날아서 벌처럼 쏘는 주먹만 활용하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이종격투기 선수 효도르처럼 ‘손, 발, 무릎, 팔뚝, 머리, 주먹을 모두 쓰는 시대이다. 온 몸의 각 부분이 자기의 경쟁력을 알리는 미디어 자체가 된 것이다. 의사소통의 기본이 되는 대화를 나누는 입을 빼고 생각해 보자. ‘말없는’ 몸 일부분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그 파워에 대한 실제 사례들을 여기 소개한다.


● 100만 번 깜박인 눈꺼풀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하루아침에 온 몸이 마비됐다. 하지만 눈꺼풀만 100만 번 넘게 깜박여 자서전 ‘잠수복과 나비’를 펴냈다고 한다(소통의 기술, 미루나무 刊). 그에게 글로 써서 보여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눈꺼풀로 응답하는 소통을 통해 비서가 완성시켰다고 한다. 눈꺼풀도 훌륭한 소통 매체가 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예다.

● 신체 장애인의 ‘손과 발’ - “그대도 조심하세요”

지난해 퇴직한 뒤 갈 곳 없던 백수 시절,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센터에 ‘웃음 치료’자원 봉사를 하던 때의 일이다. 노인복지센터에는 뇌졸중, 뇌경색, 뇌경변, 치매 등으로 인해 몸이 자유로운 분은 거의 없었다. 20여 명의 남녀 어르신들은 손을 떠는 분, 두 발을 번갈아 ‘흔들며’ 다니시는 분 등 손과 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노인분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걸을 때 제일 힘들어 하는 여성 한 분이 있었다. 몸과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바닥에 5~6cm 벌어진 틈새도 혼자서 건너지 못하는 걸 볼 땐 가슴 아팠다. 손과 발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항상 떨면서 지내는 분들은, “건강관리 잘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겉모습만으로는 아주 건강해 보이는 분이 있었는데 뇌신경의 마비로 언어장애가 와서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국어, 일본어, 우리말을 동시에 소리 내는 “씨꼬빠리 아리꿔퐁…” 대충 이런 말로 들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눈치코치로 척하면 삼천리”라고 설명을 한다.

● 106번의 ‘큰 절’-양팔, 두 손, 머리의 ‘융합’

필자가 다니는 성당의 주임신부가 지난 4월에 들려준 이야기이다.
“나와 신학교 동기 신부 중에 매일 아침 6시 일어나서 106배(拜)를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래서 ‘왜 하필 106배인가?’라고 물었더니, ‘우리나라 103人의 성인(聖人)한테 103배 하고, 3배는 내가 존경하는 부모님을 포함해 세 사람한테 하는 걸세’라고 대답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아침 출근 전 106배를 경험 삼아 시도해 봤다.
베란다에서 창밖을 향해 무릎을 구부리고 두 손을 모아 절하고 일어나기를 묵묵히 반복하니 20분이 넘게 걸렸다. 쌀쌀한 아침인데도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큰절을 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저쪽 주방에서 지금 아침밥을 차리는 아내도 생각했다.
이때의 절은 ‘무릎과, 두 손, 머리 융합’의 반복이다. 혼자 하는 일방적 행위지만 특별히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것이다.

● 양팔과 두 손, 머리의 ‘융합’-두 번째

지난 5월 14일 스승의 날 전날, 오후 7시 시청 근처 한 식당. 고교 3학년 때 담임선생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나는 회의가 늦어져 20분 지각했다. 도착해 보니 동기생이 30명 가까이 모여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운데 앉아계신 담임선생에게로 가서 털썩 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곧바로“하하하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뒤 동기생 총무가 “우리 모두 일어나 큰절로 스승의 날 축하하자!”하고 제안하자 이어 힘찬 박수를 함께 쳤다. 말이 필요 없는 이 행위로 동기들과 선생님으로부터 지각에 대한 ‘비난의 화살’ 대신 ‘칭찬의 화살’을 맞은 셈.
아무튼 양 팔과 두손 그리고 머리의 융합인 큰절은 아주 조용히 소통하면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 몸 전체와 통하는 ‘귀’

말은 음파라는 소리다. 한 사람의 양팔과 발을 꽁꽁 묵은 채 방에 가두어 놓고, 그 사람 귓전에 물방울을 똑~! 똑 ~! 똑~! 48시간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남아프리카공화국 교도소에서 고문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미쳐 버리거나 정신이상이 된다고 한다. 실제 사례다.

‘귀’라는 미디어가 계속 음파를 수신만 하면 어떻게 고장 나는지, 기계음 같은 인위적 소리에 얼마나 견디는지, 또 다른 몸 미디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인간 ‘귀’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 ‘팔 굽혔다 펴기’-푸시업

40대에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카네기멜론대 컴퓨터 공학과 랜디 포시 교수 이야기(‘대학교수의 허상과 실상’, 나남 刊). 대학 측의 제안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기 위해 강단에 선 그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의 증세를 설명한다.

“종양은 몇 개고….”그리고는 강단 중앙으로 걸어 나가 아무 말 없이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간간이 터져 나왔다. 팔굽혀펴기가 계속되자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고별 강연을 듣는 4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암에 걸려 죽어가는 교수가 말로 하는 강의 대신 몸으로 하는 푸시업으로 청중과 소통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눈물이 날 정도로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이럴 때 두 팔은 ‘람보’나 ‘터미네이터’의 그 ‘힘센 팔’이다.

● 얼굴 미디어와 호박 떡

우리 회사 직원들이 임원들을 위해 깜짝 퍼포먼스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여직원들이 주로 나서서 준비한 듯하다. 5월 14일 스승의 날 하루 전날이라 대강 짐작은 했다. 회사 직원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돈을 모아 이날의 세리모니를 위해 피자처럼 생긴 둥근 호박떡을 장만한 것.
직원들이 임원들에게 “저희들의 스승이세요. 축하드려요”하는 게 아닌가? 기분이 참 좋았다. 회사임원들을 인생의 스승이라 했다. 서로서로 눈을 맞추고 방긋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10여 명의 미소 띤 ‘얼굴’들, 둥그렇고 노란 호박떡이라는 디스플레이에 비추어졌다.

‘허리 껴안기’-허깅(hugging)

어버이날, 제대한 지 석 달이 지난 아들이 준 선물은 카네이션 몇 송이에 한 장의 편지. 편지지에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씌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아들을 허깅해 주었다. “고맙다”라고 말하면서….
하버드대 교육학과 제스킨 킴 교수는 초등학생이나 중고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공부하라!’는 그 지겨운 말 대신 허깅을 하면서 한 가지씩 칭찬과 장점을 얘기해 주라”고 충고한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친구, 기자, 선배들)에게 내가 먼저 덥석 허깅을 해 버린다. 잠시 엉거주춤 당황하던 상대방도 마침내 웃으며 적극 호응해 준다.
물론 집에서도 잠자기 전, 아침 기상 직후 아내와 자녀들에게 가끔 기분 내킬 때 한다. 가장 짧은 시간에 심적으로 가까워짐을 느끼게 하는 인간적 미디어, 허깅이다.

● ‘입술’ 미디어-서로 겹치면 어떤 힘?

전문지 기자와 며칠 전 신문로 파출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와 키스를 한 뒤 출근을 한단다. 부부싸움을 해도 하루면 끝난다고 한다.
여자들은 칭찬에도 약하지만 눈에 키스하면 눈이 멀고, 입에 키스해 주면 벙어리가 되어 바가지를 안 긁게 된다고 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한테 배운 사실이다.

● ‘뇌파’-미래 미디어의 핵심

말 대신 쓰이는 미디어-이메일, 메신저, 휴대폰, 컴퓨터에 트위터, 페이스북이 가세한 소셜 미디어 세상. 작년 말 일본 화학연구소가 뇌파로 움직이는 장애인용 휠체어를 개발했다. 뇌파가 거짓말 탐지기에 활용된 것이 몇 주 전 얘기지만, 뇌파로 움직이는 자동차, 로봇 등…. 생활 속에서 뇌파가 소통의 도구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최첨단 미디어로 자리 잡을 날도 멀지 않다.

● 몸 미디어(body media) 접촉을 넓혀라- ‘스킨십’

강의하기 전에 레크리에이션처럼,“앞사람을 간질여주라!”, “옆사람 어깨를 주물러주라!”와 같은 스킨십을 유도하면 관중들은 함께 웃으며 마음을 열기 때문에 분위기가 훨씬 좋아진다. 두말이 필요 없는 확~ 트인 소통이다. 말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말없이 몸의 일부분만으로 하는 소통- 이것이 한층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소리 없이 마음’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소통)이란 점에선 모두 노뮤니케이션(nomunication)의 도구다.

안홍진

삼성그룹 22기 공채입사

삼성물산 판매및 마케팅팀 근무

삼성구조조정본부 홍보팀 이사, 상무

삼성전자 홍보팀 상무

그레이프 PR & 컨설팅CCO(현)

()온전한 커뮤니케이션 공동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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