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터+스팟어스+프로퍼블리카 국내에서도 가능할까?
플래터+스팟어스+프로퍼블리카 국내에서도 가능할까?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 승인 2011.04.08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문과 방송이 날마다 비슷비슷한 뉴스를 쏟아낸다. 수백명씩 기자를 거느린 언론사들이 왜 이 정도 콘텐츠밖에 만들지 못하는 걸까. 상당수 기자들이 회사원으로 살아간다. 늘 현안을 쫓고 새로운 소식을 전하지만 전문성은 턱없이 부족하다. 모든 걸 다 다루지만 정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깊이 다루지는 못한다. 그게 2011년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플래터와 스팟어스, 프로퍼블리카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플래터(www.flattr.com)는 간단히 설명하면 소셜 마이크로 페이먼트 시스템이다. 소액 결제 또는 소액 기부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좋은 콘텐츠에 한 달에 1만원 정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하자. 1만원을 결제하고 나면 플래터 버튼이 달린 콘텐츠를 읽고 클릭할 때마다 구독료가 빠져 나간다. 한 달 동안 플래터 버튼을 10번 눌렀다면 각각 1천원씩, 100번 눌렀다면 100원씩, 50번 눌렀다면 200원씩 나가는 식이다.

“많은 개울물이 모여 큰 강물을…”

플래터(flatter)는 ‘추켜세우다’, ‘아양을 떨다’ 정도의 의미다. 당신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면 포스트 하단에 플래터 버튼을 붙일 수 있다. 그동안 당신의 블로그를 찾는 독자들은 당신의 포스트를 공짜로 읽었지만 이제 단돈 100원이라도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시스템은 언론사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플래터에 가입하고 플래터에서 제공하는 소스코드를 갖다 붙이기만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적립된 구독료를 입금해 준다.

플래터는 좋은 콘텐츠에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고마움의 표시를 넘어 콘텐츠 생산자에게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100원씩 1000명이 모이면 10만원, 1만명이 모이면 100만원이 된다. 플래터의 캐치프레이즈는 “많은 개울물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룬다(Many small streams will form a large river)” 다. 이 시스템은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는 역할도 한다. 여러 사람이 추천한 콘텐츠가 좀 더 가치 있는 콘텐츠일 가능성이 크다.

취지는 좋지만 사람들은 왜 플래터에 기꺼이 돈을 내는 것일까. 말 그대로 서로를 ‘플래터’하기 위해서다. 좋은 콘텐츠를 서로 칭찬하고 앞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라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이름 없는 블로거가 쓴 좋은 포스트에 100원이나 200원, 많게는 3000~4000원 정도 푼돈을 지불하는 게 전혀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발적인 기부 행위가 콘텐츠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팟어스(www.spot.us)는 플래터 모델에서 좀 더 나아가 아예 주문형 기사 생산 시스템을 갖췄다. 기자가 취재 아이디어를 내면 이에 동의하는 독자들이 모여 취재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독자들이 직접 펀딩을 해 취재를 의뢰하는 방식도 물론 가능하다. 대중에게 지혜를 구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저널리즘의 한 형태인데 독자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대기 때문에 크라우드펀디드(crowdfunded)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BBK 사건의 진실이 궁금한데 언론 보도로 그 궁금증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면 국내 최고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에게 취재를 맡길 수도 있다. 정운찬 전 총리에게 정말 이건 물어보고 싶다, 그런 질문이 있다면 인터뷰를 의뢰할 수도 있다. 외환은행 매각 반대에 나선 이 은행 노동조합이라면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그들의 답답함을 기사로 써달라고 의뢰할 수도 있다. 300만원 정도 펀딩이 가능하다면 한 명의 기자를 한 달 정도 고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은 그들이 말하고 싶은 걸 말하고 독자들은 그걸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스팟어스 같은 새로운 미디어 모델은 독자들이 직접 뉴스를 선택하고 생산과 유통 전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길을 열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취재 프로젝트를 만들고 돈을 모아 기사를 만들도록 시키면 된다.

우리나라의 오마이뉴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마이뉴스가 상당수 시민기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대고 있다면 스팟어스는 불특정 다수의 뉴스 소비자들이 직접 뉴스 아젠다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마이뉴스가 당초 취지와 달리 주류 언론의 기자들을 흉내내는데 그치고 있는 반면 스팟어스는 전문가 그룹을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저널리즘의 외연을 확장한다.

비영리 탐사보도를 표방한 프로퍼블리카(www.propublica.org)의 실험도 주목할만 하다. 100% 후원으로 운영되고 작성된 기사는 뉴욕타임즈 등 제휴 언론사에 무료로 공급된다. 기자는 30명 남짓이지만 폴 스타이거 전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 등 쟁쟁한 거물급 언론인들이 포진해 있다. 이 ‘듣보잡’ 언론사가 지난해 인터넷 언론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열성 독자들은 그 가치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프로퍼블리카는 주류 언론이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광고주의 눈치를 보고 탐사보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 틈새를 정면으로 공략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가 1년 동안 쓰는 기사는 130여건, 한 달에 10건이 좀 넘는 정도다. 비슷비슷한 뉴스는 과감히 포기하고 양보다는 질, 철저하게 발굴 특종으로 승부한다. 정보가 범람할수록 좀 더 가치 있는 정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했기 때문이다.

양보다 질, 발굴 특종으로 승부

프로퍼블리카는 기사를 판매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출처만 밝힌다면 모든 기사를 마음껏 퍼갈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있다. 샌들러재단 등에서 연간 수백억원의 후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콘텐츠 퀄리티와 독자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언론, 구호로 외치기는 쉽지만 물적 토대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프로퍼블리카는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다.

프로퍼블리카는 역설적으로 위기의 올드미디어들이 나갈 방향을 제시한다. 광고나 구독이나 주류 언론의 수익모델이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 어설픈 주의 주장보다는 철저하게 팩트 발굴을 우선할 것, 현장에 머물 것, 결국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로 회귀하는 것이 언론의 생존 해법이라는 교훈을 안겨준다. 다들 콘텐츠 유료화를 고민하지만 그에 앞서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플래터나 스팟어스, 프로퍼블리카 같은 대안언론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탄탄한 인터넷 인프라와 끈끈한 소셜 네트워크 기반을 갖춘 우리나라는 환경이 더 좋다. 플래터의 수익 배분 시스템과 스팟어스의 생태계 모델, 프로퍼블리카의 콘텐츠 전략 등 각각의 장점을 모아 새로운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탐사보도 중심의 주문형 콘텐츠 생산 시스템, 그럴듯하지 않은가.

핵심은 생존을 위해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면 안달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팔린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가치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일 텐데 이 지점에서 크라우드소싱 기법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 만들어서 던져주는 방식이 아니라 뭘 만들 것인가부터 독자들에게 지혜를 구하라는 이야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