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값 지식인들’의 나라 한국
‘콩나물값 지식인들’의 나라 한국
  • 황인선 (ishw11@naver.com)
  • 승인 2017.03.21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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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코리아? 그저 웃지요

요즘 후보들의 대선 공약이 한창인데 그들이 토하는 거시 문제 대신 사소한 두 가지 이슈를 얘기하려 한다. 하나는 민간전문가들의 재능에 정당하게 대우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드백을 적시에 제대로 하는 사회 만들기이다. 태산이 아니라 돌멩이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인데, 기실 사람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태산이 아니라 돌멩이이다.

▲ 한국의 수많은 민간 전문가들이 열정페이를 강요받고 있다.

잘 알려진 일화 하나. 피카소가 기차를 타고 남부로 여행할 때다. 한 중년 부인이 그를 알아보고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피카소가 슥-슥 그려줬다. 부인이 영광이라며 얼마를 사례하면 좋겠느냐고 하자 피카소가 금액을 불렀는데 컸다. 부인이 놀라 “잠깐 그렸는데 너무 비싸군요” 하자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40년의 노력이 필요했으니까요”라고 응수했다.

이와는 완전히 다른 일화도 있다. 한 문화정책 전문가는 은퇴 후 강의와 컨설팅으로 늘 바쁘다고 했다. 모두 부러워했다. 그런데 만나서 들어보니 실상은 딴판이었다. 찾는 곳도 많고 바쁘기는 한데 정작 수입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재능 기부, 공짜 컨설팅이 너무 많다고 했다. 체면에 돈 이야기는 꺼낼 수 없어 속으로만 앓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 구청에 자문을 해준 사례를 들었다. 지역에 봉사하려는 마음도 있어 며칠간 자료 준비하고 나름의 기획안도 만들어 몇 시간 컨설팅을 해줬단다. 며칠 후 에이전트에서 대가를 보내왔다. 그런데 정말 치사한 금액이었다. 자기의 35년 이력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유럽에서 파견 온 모 기자도 비슷한 사연을 기사로 쓴 적 있다. 한국의 외식업체들이나 친목단체에서 자기 아내를 불러 푸드 자문을 받고는 그냥 저녁을 사는 걸로 끝이라는 내용이다. 필자가 알던 모 프랑스 박사도 크리에이티브를 돈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 절망하고 2년 만에 돌아갔다.

그런데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노(No), 실상은 전문가 대우를 하지 않는 콩나물 지식인 값 코리아다.

▲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확정 발표한 새 국가브랜드 슬로건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뉴시스

잘 생각해보자. 무늬만 전문가를 빼놓고 보면 대부분의 전문가는 수십 년 노하우가 있는 움직이는 팩토리이고 연구소이다. 그의 뇌 자체가 바로 첨단 장비인 것이다. 그런데 그 장비를 돌리는 비용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니 심각한 문제다. 공공부문이 대체로 다 그렇기는 하지만 문화판은 더 심하다.

예산이 없다는데 하드웨어에는 수백억씩 쏟아 붓고(대부분 선심용 토목사업으로 전락), 강남 최모 아줌마의 기획서 딸랑 한 장에 혈세 수십억이 지불되는 경우는 무엇인가. 심지어 서울시 모 구청은 문화예산을 삭감해서 민생복지로 전용한다는데 문화와 민생이 별개의 것인가? 이러면 미래경제인 컬처노믹스는 다 헛말이다.

10여년째 공공 심사비, 자문료는 거의 동결이다. 너무 적어 미안하다는 소리만 3년을 들었는데 개선할 생각을 누구도 안 한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전문성을 획득한 수많은 민간 전문가들이 은퇴하고 사회는 점점 대기업 중심에서 민관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들의 지식을 이렇게 악용한다면 정말 능력 있는 전문가들은 공공부문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업과 공공은 심각한 지식 비대칭이 벌어지게 된다.

열정을 부탁하려면 그에 맞는 대가 제공이 먼저다. 100세 이모작 시대를 살아내는 것은 그들에게도 지난한 일이기 때문에 적정 수입이 없으면 견디기 어렵다. 젊은이들에게만 열정페이가 문제는 아니다. 사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축이 전문가들임을 수긍하다면 먼저 공공부문부터 페이 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그 비용은 하드웨어에 드는 20%만 돌려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2000년대 초 은행은 고객 대기시간 몇 분 이내 처리, 대기업 관리팀은 하청회사에 어음 1개월짜리 발행, 직원들 지원요청은 당일 피드백 등 운동이 기업 사이드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그 결과 일부에서는 꽤 개선됐다. 하지만 아직도 ‘게으른 피드백(Lazy Feedback)’은 숨은 채로 남아 있다.

작년에 모 벤처기업 멘토링을 했는데 자문료 입금은커녕 두 달이 지나서 지원기관 담당자에게 3-4차례 등록과 수정, 비밀번호 정정 요구 등을 들으면서 또 한 달을 소비했다. 포기하려다가 오기가 나서 관련 부처 고위급에게 전화를 했다. 시스템 관리 회사들이 겹쳐있어서 그렇다고 해명을 하더니 바로 당일 입금됐다. 그렇게 쉬운 것을! 정말 헐-이다.

▲ 지식마저 가성비로 따지다 보니 정말 능력 있는 전문가들이 판을 떠나게 된다.

주위의 프리랜서나 전문가들 말을 들으면 사이트 등록, 정산, 지불 일정 등에서 피드백 등이 불만스러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선진국은 사소한 것을 잘하는 나라이다. 작은 불만에 주목하는 회사가 성과도 탁월하다. 우버나 카카오톡 택시 서비스 보라. 차가 오는 것이 화면으로 보인다.

공공에서도 드물지만 빠른 피드백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바로 사회적 신뢰를 만드는 숨은 혁신가다. 고정급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들은 부정기 수입에 의존한다. 그래서 입금 일정이 안 잡히면 실제 수입과는 상관없이 생활이 꽤 피곤해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돈 달라는 소리를 잘 못한다. 결국 정말 능력 있는 전문가들이 판을 떠난다. 얼마나 낭비인가. 서비스를 받았으면 얼마를 언제까지 지불하겠다고 피드백 주는 문화는 담당자나 팀장의 작은 노력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민생이 별건가.

사회를 구성하는 재료(Ware)에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휴먼웨어가 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나라일수록 점점 후자가 중요해진다.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만 만든다고 될까. 핵심은 창조인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투명한 피드백 같은 공공 휴먼웨어이다.

예산 400조 한국은 돈이 없고 전문가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돈이 안돌고 전문가가 가성비 소비재처럼 취급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대선 후보들은 만일 집권하면 이런 휴먼웨어의 부실한 운영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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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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