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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 다음은 무엇일까[신인섭의 글로벌PR-히스토리PR] 거짓의 범람…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인 2017.01.02  09:07:16
신인섭  | thepr@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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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신인섭] 미국에서 심한 욕 중 하나가 “You are a liar”다. 그만큼 미국인들은 거짓말을 싫어한다. 원인은 3400년 전 모세의 십계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정교분리의 나라이기는 하나, 사실상 기독교 국가이기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아홉 번째 계명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지만 거짓증거도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됐다.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다. 같은 해 11월 8일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다. 민주주의 본산이라고 자청하는 두 나라의 선거는 숱한 이야기를 남겼고 그 여파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미 작년이 되었지만 매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2016년의 단어가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이 말의 사용 빈도가 2000%나 폭증했다고 한다. 물론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과 미국의 현상이었다. 

포스트 트루스를 우리말로 직역해 보면 ‘진실의 다음(탈진실)’이다. 조금 속되게 의역하면 ‘오리발’이다. 닭 잡아먹느냐고 다그치는 주인에게 오리 잡아먹었다고 내미는 발, 즉 거짓말이란 뜻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 트루스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객관적 사실보다 신념이나 개인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 또는 조짐’. 달리 말하면 거짓이 여론 형성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이 2016년을 상징하게 됐을까?

두 선거의 함의

우선 영국의 경우를 보자. 브렉시트는 찬성(Leave) 51.8%, 반대(Remain) 48.1%로 3.7%P 차로 결정됐다. 영국 4개 지역 가운데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잔류 응답이 각각 55.8% 및 62.0%로 예측됐었는데, 그 전망이 뒤집힌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잔류의 기수였고, 반대편에서 탈퇴를 역설한 이가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 시장이다. 탈퇴파는 영국이 매주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보내는 4억6200만달러, 연간 기준 240억달러(약 28조원)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 그 돈을 영국 보건과 기타 정부 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후 4억6200만달러가 아니라 약 2억달러라는 사실이 재정연구소 자료에서 나타났지만, 그것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한 런던인의 인터뷰 장면. AP/뉴시스

탈퇴파가 주장한 또 다른 것은 자국민의 취직 안정성이다. EU를 떠나도 영국인은 EU 회원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EU의 난민 수용의 의무는 사라져 선별적으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과는 달랐다. 상식적으로 따져 봐도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리만 갖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브렉시트 이후 탈퇴파 수장격이던 영국 독립당 나이젤 파라지 대표는 거짓을 얘기한 적 없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그는 BBC방송에 출연해 탈퇴진영이 내세웠던 바를 약속한 적 없다고 했다. 한편, 탈퇴파의 또다른 대표주자 존슨은 영국의 외무장관이 됐다.

미국은 또 어떤가? 막말과 거짓말을 일삼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트럼프는 줄곧 몇 가지 허언을 했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둘째, 트럼프 자신은 이라크 전쟁이 있기 전부터 이라크 침공을 반대해왔다. 셋째,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저지주에 사는 무슬림(이슬람교도) 수천명이 테러 공격을 축하했다. 넷째, 공화당 경선 라이벌이었던 테드 크루즈의 부친은 1963년 달라스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오즈월드의 친구였다.

트럼프의 이 네 가지 주장은 하나도 사실이 아니었다. 2016년 8월 24일자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트럼프의 “사실”이라는 발표 중 70%의 태반이 거짓말이거나, 아주 거짓말이거나, 바지에 불났다(Pants on Fire, 미국 어린이가 거짓말쟁이를 놀려대는 표현)는 따위였다.

   
▲ 트럼프 대통령 당선 항의 시위에서 한 여성이 ‘트럼피즘은 파시즘’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돼 그런 거짓말 확산에 가장 큰 ‘공로자’는 페이스북과 구글이었다.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유언비어의 전파통로가 되면서 대선 이후 책임론이 불거졌다. 결국 이 두 회사는 거짓말 색출 장치를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관련기사: [트럼프 캠페인 복기] 소셜미디어 통한 가짜뉴스 확산

2016년 12월 5일 뉴욕타임스의 마크 톰슨 사장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은 뒤 일주일 동안 신문 구독자가 4만1000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물론 종이신문과 디지털 구독자수를 합친 숫자다. 톰슨은 부수 증가 이유로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와 정치인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어서 그것을 따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포스트 트루스가 2016년의 단어가 된 이유는 두 국가의 선거결과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진실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느냐 하는 질문인 셈이다.

촛불이 밝힌 2017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워싱턴과 런던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신의 피조물이란 공통점을 지닌 인간이 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없다. 지난해 광화문을 메운 수백만 촛불이 대통령을 탄핵의 단두대에 세웠다. 56년 전 같은 장소에선 4.19혁명이 일어났다.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다만 185명이 죽었고 1500여명이 부상 당했다.

   
▲ 병신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10차 주말 촛불집회 현장. 뉴시스

논어 자로(子路)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성취되지 못하고 모든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 둘 곳을 잃게 된다.

포스트 트루스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진실이 어긋나면 정권도 무너지고 언론도 PR도 쓸모가 없어진다.


#브렉시트#EU#트럼프#미국 대선#힐러리#신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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