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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PR의 기원, 일본 역사 비춰봐야[신인섭의 글로벌 PR-히스토리 PR] 근현대사 100년에서 단초 발견
승인 2016.09.23  11:00:38
신인섭  | thepr@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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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신인섭] 2년 전 일본에 가서 우리로 말하자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홍보실과 일본PR협회를 방문했다. 당시 서점에서 <일본의 광보·PR 100년>을 샀다. 2011년 출간된 것으로, 동경경제대학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역임한 학자 외 5명이 공저했다.

   
▲ <일본의 광고·PR 100년> 표지. 신인섭 제공

구매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 아직 미결로 남아 있는 ‘PR’이냐 ‘홍보’냐 하는 낱말 문제의 기원을 더듬기 위해서다.

해방 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홍보(弘報)라는 말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만주국(滿洲國) 홍보에 관한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 국문 기관지가 된 매일신보(每日申報)에도 홍보란 말이 몇 번 나오는데 모두 해삼위(海蔘威) 즉 블라디보스토크가 발신지이다. 이 퍼즐을 풀기 위해서 책을 샀다. 

<일본의 광고·PR 100년>에는 어렴풋하게 기억되는 흥미진진한 사실들이 담겨 있다. 일본이 만주국을 강점한 것은 1931년이다. 그 배경에는 만주에 있던 일본 육군, 관동군(關東軍)의 희대의 조작극이 있었다. 정작 만주를 손에 넣고 보니 민심을 도닥거릴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남만주철도(이하 만철) 총재실의 홍보과(弘報課)가 탄생했다.

물론 1923년 만철 창립 초기에도 홍보계가 있었으나 활동은 미약했다. 그러다가 1936년에는 총재 직속 홍보과로 승격, 확장돼 100명 가까운 직원을 가진 방대한 조직으로 만주뿐만 아니라 조선, 중국 일부, 일본 본토 나아가서는 파리와 뉴욕에서도 홍보 활동을 전개할 만큼 국제적으로 커졌다.

만철 홍보의 주모자는 3명이었다. 러일전쟁 승리의 대가로 얻은 만철 초대 총재 고토(後藤), 후에 총재를 거쳐 일본 외무장관이 된 미국 유학생 출신의 저명한 정치가 마쯔오까(松岡), 그리고 그가 극비로 만철 이사로 앉힌 예비역 육군중장 다카야나기(高柳)다.

다카야나기가 발탁된 이유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공산혁명 때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 군대 참모장으로서 군대 내 홍보반을 조직해서 맹활약한 실적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군대 안에 홍보를 도입한 선례는 이미 1910년대 말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호칭이 바로 홍보였다.

   
▲ '만주언론통제차 홍보협회를 설립'이라는 헤드라인의 조선일보 기사(1936.6.3) 신인섭 제공

홍보활동을 가장 조직적으로 전개한 일본 정부기관은 만철 홍보과(만철 자본금 2억엔의 절반은 일본 정부로부터 나왔기에 정부기관이나 다를 바 없었다)와 1936년에 창립한 만주홍보협회였다. 이 협회는 만주의 말단 행정 단위에까지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무렵 홍보란 사실상 선전, 선동에 가까운 프로파간다(Propaganda)였다.

이러한 이유로 해방 전 1930년대까지는 만철 홍보과 및 만주국 홍보협회 때문에 홍보라는 말이 일본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만주에서 일본이 전개한 각종 홍보활동은 방대한 것이었으며, 미국 같은 선진국의 선전 이론도 소개했다. 그 결과 만주의 각종 홍보 정책은 일본에 도입하기 위한 ‘시험실’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PR, 홍보, 광고 변천사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부터 맥아더가 이끄는 총사령부라는 뜻의 제너럴 해드쿼터스(General Headquarters), 줄여서 GHQ가 일본을 철저히 민주화하기 시작했다. 6년이 걸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본 중앙정부 부처는 물론 모든 지방자치체에 퍼블릭 릴레이션스 오피스(Public Relations Office, PRO) 설치를 건의한 것이다. 군정 하의 건의란 사실상 명령이다. 한편 1936년에 만든 국책 통신사인 동맹(同盟)통신을 없애고 두 개 민간 통신사인 지지(時事)통신과 교도(共同)통신을 두게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장조사 회사를 창립해 여론조사를 했다. 이때 대두된 문제가 다름 아닌 PRO라는 말의 번역이었고, 만철의 해방 전 활동이 남긴 별로 달갑지 않은 이미지가 있으나 ‘홍보(弘報)’란 말이 가장 적당하다고 보고 사용키로 했다. 이것이 1947년 무렵의 일이었다.

문제는 당시 일본 정부의 상용한자 가운데 ‘홍(弘)’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광보(廣報)로 하기로 했다. 그 결과 지금 일본에서는 ‘광보=PR’이 공식화됐다. 간추려 본 일본의 PR, 홍보, 광보란 낱말의 변천 과정이다.

일본에 홍보라는 낱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인 1886년인데 홍보당(弘報堂)이라는 이름의 신문광고대리점이다. 유력 광고대리점이던 이 회사는 관동대지진(1923년)의 피해를 입어 자료가 없어졌기에 더 이상 홍보라는 사명(社名)의 유래 추적이 어렵다.

   
▲ '만주국에서 방공국책수립' 타이틀의 동아일보 기사 일부(1936.7.19) 신인섭 제공

홍보란 말은 원래 한문에 있는 낱말은 아니고 일본에서 19세기 말 무렵에 만든 일본식 한문 조어(造語)다. (그런 의미에서는 광고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조어이다)

서두에 언급한 해방 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만주국 홍보 관련 기사가 나오는 이유는 남만주철도회사 홍보과와 만주홍보협회의 홍보 활동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현대 일본 광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츠의 요시다 히데오(吉田秀雄) 사장이 만주에서 돌아온 사람을 많이 영입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만철과 만주홍보협회에서 일하던 홍보 베테랑을 끌어 모은 것이다. 그리고 요시다가 해방 후 곧장 사내에 홍보에 대한 연구를 지시한 수수께끼 같은 의문도 풀리게 된다. 세계 유일한 PR비 자료인 <홈즈리포트>에 덴츠PR이 일찍부터 등장하고 있는 이유도 추론이 가능하다.

PR의 뿌리,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고리타분한 듯한 이런 기록들이 모두 <일본의 광보·PR 100년>에 있다. 해방 7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PR이냐 홍보냐 또는 공중관계냐 따위의 논의가 있는 우리 현실을 뿌리부터 자세히 살피려면 숙독할 필요가 있다. 책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들이 포함돼 있는데 홍보 뿐 아니라 일본 근대사 100년을 압축해 놓았다.

서문을 제외하면 10개 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광보의 탄생-근대화 가운데서’이며, 2장은 ‘광고·PR의 도입-태평양전쟁 패전에서 고도성장시대까지’이다. 3장부터는 1960년대 일본 고도성장 시대에서 현재까지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참고문헌에는 181권의 문헌 소개와 더불어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2000년까지 일본PR의 연표가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 홍보라는 낱말이 PR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그 원인(遠因)을 살피는 데 이 책은 필수적이다. 정치적 독립은 문서에 서명하면 하루 사이에 이뤄진다.

그러나 문화는 그리 간단하게 바뀌지 않는다. 광고, 선전, 공보, 홍보, 광보, PR이라는 낱말을 문화의 일부로 전제하면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부득이 과거를 뒤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지금의 잘잘못을 비춰 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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