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년…추억하기 싫은 메르스를 기억하며
벌써 일년…추억하기 싫은 메르스를 기억하며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6.06.07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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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건강한 반전 위해 바른 소통법 복기할 때

[더피알=유현재]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흐른다. 초유의 보건위기이자 우리나라 전체를 그야말로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덜컥 찾아왔던 바로 그 시점에서 벌써 1년여가 지났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특별집 담회 ‘한국의 메르스 사태 1년,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남아있는가?’는 넓은 강당을 채울 만큼의 열기가 가득했다. ‘메르스 경험의 사회적 기억과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헬스컴 측면에서 복기한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를 비롯해 다방면의 연사들이 현 시점에서 메르스가 갖는 의미와 이슈들을 논의했다.

▲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병원 관계자들이 출입자들의 체온을 체크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안타깝고 아프고 불쾌하고, 적잖이 힘들었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메르스 파동은 어찌됐던 정부의 종식선언에서 이미 수개월이 지났다. 이후 그에 버금가는 보건위기가 찾아오지 않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메르스 파동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뼈아픈 교훈을 줬기에 지금도 충분히 현재적 의미가 있다. 헬스컴 연구자 입장에서 너무나 못마땅했던 사안들을 다시 한 번 지적해보고자 한다.

늦은 현실인식, 결여된 역지사지 禍 키워

첫 번째는 정부가 진행한 일부 소통 행태에 대한 강력한 아쉬움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숨기면 진짜로 숨겨질 것이라고 믿었는가?”라는 얘기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메르스가 한창 파국으로 치닫던 첨예한 상황에서 당시 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의심환자가 거쳐간 의료기관을 밝혀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더욱 큰 혼란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병원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당시의 시점에서 그 판단이 더 현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지만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은 엄청난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복지부 장관의 그같은 판단과 발언은 대한민국의 상황, 즉 우리나라 대중들이 보유한 극강의 미디어 활용력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현실감 떨어지는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장관이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하면 대중들이 ‘네, 알겠습니다’하며 손 놓고 기다려 줄 것이라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복지부 장관의 비현실적 발언이 전파를 탄 직후 국민 일부는 소위 ‘메르스 지도’를 제작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는 정부의 경고도 접한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했듯 해당 메르스 지도의 상당 부분은 실제 사실에 부합되는 내용도 있었다.

해당 지도가 삽시간에 퍼져나간 시점에서 정부는 관련 의료기관을 공표한다는 방침으로 선회하는 결정을 내린다. 늦게나마 현실을 인식한 이유겠지만 국민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차피 밝혀질 상황을 전제하고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 진단 “번지수가 잘못됐다”)

▲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으로부터 대응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뉴시스


두 번째로 정부 당국의 소통에서 아쉬운 대목은 ‘역지사지’가 결여됐다는 점이다. 그토록 급박한 상황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졌다.

다시 언급하기도 민망하지만 메르스가 최악의 공포로 스멀거리던 어느 날 온라인에는 정부기관의 이름이 박힌 메르스 관련 홍보물이 노출됐는데 “낙타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쓰여 있었다. 메르스 예방을 위해 가급적 낙타고기를 가까이 하지 말고 낙타우유도 음용하지 말라는 친절한 당부도 포함됐다. 일생에 기껏해야 한두 번, 그것도 동물원이나 사진 등을 통해서만 낙타를 접해본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해당 홍보물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관련기사: 메르스 대책, ‘소통법’부터 배워야)

당시 네티즌이 남긴 수많은 댓글은 향후 정부발(發) 메르스 정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힌트가 됐다. 신뢰는 추락했고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해당 홍보물은 공항 등에 비치하는 자료들을 한국어로 직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였다는 해명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비아냥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조소와 비아냥은 환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며 홍보 상태가 엄청난 마이너스 상황이라는 지표에 다름 아니다. (관련기사: ‘메르스 공포’, 땜질식 커뮤니케이션이 원인)

당시 메르스는 국민들에게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객관적 치사율이 여타 감염병에 비해 높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해도 언제 어디서 나와 혹은 내 가족이 하루아침에 격리자로 바뀔지 걱정하는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 긴급 상황에서 실수나 해프닝은 결코 용납되지도 않으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카더라식 보도, 국가 위기를 가십성으로

메르스 당시 대중을 향한 헬스커뮤케이션에 막중한 역할을 담당했던 언론 및 미디어 소통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과학적 팩트나 데이터 등은 전혀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카더라~’ 수준으로 비극에 편승한 기사들에 대한 유감이다.(관련기사: 메르스 혼란, 언론은 책임 없나)

▲ (자료사진) 메르스 확산 관련 긴급회의에서 취재진이 질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메르스라는 유례없는 공포, 국가적 위기 상황 즈음해 일부 언론들은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식품들을 무책임하게 열거하며 감염위기를 당장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인양 보도했다. 물론 해당 식품들이 면역력 증강과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겠으나, 일단 감염유행이 시작된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충분한 것이었다.

일부 기사의 인터넷판에는 해당 상품들을 즉시 구입할 수 있는 링크까지 연결해 놓는 등 정말 가관인 상황까지 연출됐다. 그 와중에 또다른 언론들은 앞서 언급한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역으로 내보내는 등 이중삼중의 혼란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지적할 언론의 모습은 메르스 관련 보도를 야구나 경마 등 스포츠경기 중계를 하는 것처럼 시시각각 추이 전달에 중점을 둔 것이다.

대중이 곱씹어볼 수 있는 심층취재나 관련 외국사례, 극복방법에 대한 가이드 등 개별 언론의 ‘부가가치가 더해진’ 수준 있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고 계속해서 변하는 격리대상자, 사망자와 완치환자 숫자 등을 단순 전달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물론 상황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더없이 중요했겠지만 흥미 위주의 수치 제공을 반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 (자료사진) 메르스 당시 언론들은 ‘부가가치가 더해진’ 수준 있는 보도보다는 흥미 위주의 수치 제공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메르스 관련 언론보도에서 아쉬웠던 대목은 국민의 건강 위기가 최고 레벨이었음에도 정치프레임이 과도하게 반영된 것으로 판단되는 일부 보도들이 관찰됐다는 점이다. 1번 환자의 비도덕성과 이기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난을 유난히 반복해 게재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의 병문안 문화가 마치 메르스 사태의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대서특필 하는 사례도 있었다.

대척점의 시각에선 정부의 허술한 방역시스템, 황당한 대처에 대한 날선 비난 등에만 유난히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도 존재했다. 물론 이도저도 아닌 오로지 클릭에만 목숨을 거는 미디어들은 온갖 자극적이고 현란한 헤드라인을 뽑아내는 한편, 모든 내용을 가십성으로 만들어버리는 작태를 보였다. (관련기사: 보이는 메르스 사태, 언론들에 남겨진 무거운 숙제)

예고 없이 밀려오는 각종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실로 다양한 측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은 상황의 건강한 반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일년 된 메르스를 통해 다양한 교훈을 얻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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