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침보도’와 뉴스 리터러시
‘동침보도’와 뉴스 리터러시
  • 더피알 (thepr@the-pr.co.kr)
  • 승인 2016.02.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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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로 인용기사 급증…뉴스 해석 힘 길러야

미국이 2003년 3월 20일부터 26일간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을 때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검색어 가운데 하나는 ‘동침보도(embedded journalism)’였다고 한다.

동침보도는 미국과 영국·오스트레일리아 연합군과 같은 침상을 쓰는 종군기자들이 연합국의 시각을 대변할 수밖에 없음을 빗댄 것이다. 이는 객관적인 상황, 즉 진실을 알고 싶은 욕구가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쪽 얘기뿐 아니라 상대방 얘기도 들어봐야 사실에 근접한 상황과 정보를 알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전시 상황에서 언론은 관찰자나 감시견이 아닌 당사자가 돼 안보결집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준전시’ 상태인 우리나라에도 동침보도와 비슷한 양상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2월 23일 테러방지법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면서 연초부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비롯된 한반도의 긴장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한국방송공사(KBS)의 미디어인사이드에 따르면 2월 7~14일 지상파 3사 메인뉴스가 방송한 대북 관련 소식 261건을 분석한 결과 41%가 따옴표 제목을 사용했다. 그 중 절반은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었다. 방송뿐 아니라 신문에서도 정부 관계자나 익명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가 크게 늘었다. 진실을 알지 못하거나 진실에 다가가기 어려우면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6일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통해 “우리 내부에서 갈등과 분열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원인보다는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야당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는 데 대해 24일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시키겠다는 얘기인지, 어떤 나라에도 없는 기막힌 현상”이라고 10여 차례 책상을 내리치며 야당을 성토했다.

전시(戰時)언론, 안보결집효과 불러

▲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방송뿐 아니라 신문에서도 정부 관계자나 익명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가 크게 늘었다. (자료사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14일 박 대통령이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위해 국회 연설을 요청했다고 브리핑하는 모습. 뉴시스
박 대통령은 국가 안위와 국론 분열을 걱정했지만 국가가 안보 위기에 처하면 최고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해 위기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안보결집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라고 한다.

이슬람 무장단체 알 카에다 단원들이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등에 대해 자살 테러를 벌인 직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51%에서 단숨에 90%까지 오른 것이 단적인 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안보정국이 심화하면서 2월 15~19일 주간 집계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전주에 비해 3.7%포인트 반등한 45.9%로 나타났다.

전시(戰時) 언론은 안보결집을 촉진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관찰자나 감시견이 아니라 당사자가 된다. 이는 비단 독재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자유롭게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지만 정작 전쟁에 돌입하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동침보도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이다. 1960년대 중반 우리 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에도 베트콩을 섬멸했다는 ‘애국 보도’만 난무했을 뿐 패퇴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은 거의 없다.

우리 언론은 현재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난하면서도 정부의 대책이나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관련해 보수 언론에서는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옹호한 반면, 진보적인 언론에서는 대북 제재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남북간 마지막 통로까지 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드 배치를 놓고도 찬성론과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인 언론의 비판의 목소리도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면 될수록 수면 아래로 잠복할 수밖에 없다.

남북간 긴장 고조에 대해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일 것이다. 4·13 총선이 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안보결집 여론과 동침보도가 상승 효과를 일으키면 가뜩이나 분열된 야권으로서는 당선자들을 내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이 명백한 만큼 박 대통령의 지적처럼 ‘북풍 음모론’을 제기할 수는 없지만 북풍의 확대와 부풀리기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론의 이견…미디어 소비자 깨어 있어야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도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북한과 더불어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사악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대량 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이라크 어디에서도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 2011년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1%에서 90%까지 치솟았다. 9·11 테러 당일 미국 백악관 지하 벙커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 출처=nara 플리커/뉴시스

최근 미디어 교육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분야가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다. 이제 미디어 소비자들이 스스로 뉴스를 선별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키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아 믿을 수 있는 바른 정보에 대한 갈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언론의 정파적 성향도 큰 문제다. 우리 언론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서 벗어나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이념 성향과 이해 관계에 따라 여러 사실 가운데 특정 사실을 선별해 보도하는 경향이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매체만 보아서는 어떤 현상의 한편만을 보게 될 뿐 진실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뉴스 소비자들은 자신이 진정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통제하는 데에 필요한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권력자와 언론이 보내는 정보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구성되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스스로 깨어 있어야 잘못된 정보와 뉴스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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