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 없는 찐빵’이 너무 많다
‘앙꼬 없는 찐빵’이 너무 많다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5.10.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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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전사훈련을 교양강의로 여겨서야...

[더피알=정용민] 당연한 이야기다. 정부나 기업이나 위기관리의 99%는 상위 1%의 경쟁력에 의해 그 성패가 나뉜다. CEO가 가장 먼저 훈련 받아야 임원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 혜안이 생긴다.

CEO가 투자해 고민한 시간만큼 그 회사의 위기관리 체계는 빈틈이 없어진다. CEO가 빠져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CEO가 가장 많이 알아야 하고 모르는 부분은 간접경험으로 위기를 실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기업의 위기는 관리된다.


위기관리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무자들이 CEO와 핵심임원들을 평소 그 준비와 훈련의 시간에 불러들이기 주저한다면 문제다. 준비와 훈련에 있어 시간은 가장 많이, 심도는 가장 깊게 투자해야 하는 그룹이 바로 CEO를 비롯한 상위 1% 그룹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예로 들어보자.

군을 지휘하는 군단장과 사단장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실제 소대장 시절을 지나며 소대단위의 기동을 익히고 경험하고 리드했던 경험자들이다. 중대와 대대 그리고 연대를 거치면서 더 큰 단위의 기동과 편제, 그리고 전략을 배우고 익혔다. 그 후 그 자리에 올라 수천에서 수만 병력을 한눈으로 내려다보며 움직일 수 있게 된 ‘철저히 훈련 받은 자’들이다.

군대와 기업의 다른 점

그러나 기업은 어떤가? 위기관리를 대리·팀장급 단위에서 경험해 본 직원이 그리 많지 않다. 본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일부 홍보나 법무, 감사부서 직원을 빼놓고는 특정 직급 이하 시절에는 전사적 위기관리위원회 회의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초급임원이 돼도 상위 1%가 관여하는 위기관리위원회에 배석 정도 하는 경우를 빼고는 실제로 현장부터 통제센터까지 지휘 경험은 전무한 게 현실이다. 고위임원이 되면 매일이 위기고 이슈라고는 하지만, 누군가 자신들에게 위기관리 원칙과 체계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냥 매번 쳇바퀴 돌 듯 위기대응이라기 보다 반응 차원에서 움직이고 의사결정 하는 경험들에 만족하곤 한다.

CEO는 다를까? 그렇지 않다. 흔히 인사 보도자료에서 언급되는 ‘재무통’ ‘마케팅통’ ‘영업통’이라는 전문분야 외에 전사적 위기관리 경험이나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이 얼마나 스스로도 불안한가?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초급임원 레벨부터 지속적으로 위기관리 실무부터 통합관제 시뮬레이션까지를 단계별로 훈련받는다. 더 나아가 이제는 각국에 나가 있는 지역별(zone), 국가 지사별 위기관리 훈련에 본사 위기관리 전담 임원들을 파견하기까지 한다.

한국에 부임한 외국기업 대표들에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매니저 시절부터 여러 위기관리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한국 지사에 있는 매니저들과 임원들이 위기관리에 별반 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외국기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상황을 설정한 훈련이나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간접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체계 감각과 연륜이 드러난다.

우리 기업들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일단 필자의 경험에 근거해 국내 기업 CEO들 중 위기관리 관련 여러 트레이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참석, 훈련 받는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CEO가 훈련 프로그램 내내 함께 한다는 것을 불편해 하는 임원들이 있는 곳도 있다.

일부 CEO는 위기관리 간접경험을 위해 매우 중요한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시작부분 인사말과 당부말씀만 하고 자리를 뜨기도 한다. 마치 ‘임원들과 핵심 매니저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빠져있는 위기관리위원회, 즉 통제센터에서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보다 많은 CEO들과 핵심 고위임원들이 ‘위기관리 훈련이나 시뮬레이션은 직원들이 받아야 하는 교양’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집중 훈련이나 시뮬레이션까지 실행하는 기업들은 그나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더 많은 기업들은 위기관리 훈련이라 생각하면서 강사를 불러 ‘강의’를 듣는다. 위기관리 사례를 들려달라고 한다.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곳들도 있다.


‘강의’는 모든 위기관리의 힘?!

절대 위기관리를 강의로 체계화 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태권도 영화를 보고 실제 대련에 나가는 것처럼 무모한 도전이다. 수영이나 자전거 타는 법 강의를 듣고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한번 생각해 보라.

물론 강의를 의뢰하는 기업 측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임직원들이 위기관리 마인드가 없어서요. 그 마인드를 좀 고취해 주었으면 합니다.” 좋은 취지다. 하지만 그건 취지지 방법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위기관리 마인드 고취’ 강의에도 CEO가 바빠 참석하지 않으면 보다 큰 문제다. 그 취지인 ‘전사적 마인드 고취’에도 격차가 생기니 위기관리 체계 확립에는 더욱 답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런 단순한 관심과 접근들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른 어떤 기업에게 운 나쁘게 위기가 발생하면 또 그 위기를 반면교사 삼는다며 새로운 강의를 듣는다. CEO나 임원들 대부분이 ‘이미 들었던 것’이라면서 자리를 뜬다. 실질적 위기관리 역량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변화하거나 강화된 것이 없는데 ‘강의를 들었으니 좀 나아졌겠지’라 추측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관심이 약해진 거다.

실전에서 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CEO가 먼저 훈련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임원들도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맞춰 훈련을 받게 된다. CEO가 참석한 위기관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봐야지 CEO 스스로 자사에게 어떤 역량이 부족한지 정확히 알게 된다. 그리고 임원들과 개선 논의를 실질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선의 문제를 CEO가 들을 수도 있어야 한다. 공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프로세스를 CEO가 직접 들어보고 관찰해 봐야 한다. 한두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경우엔 지금과 같이 한다 해도, 대여섯 명 이상의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땐 어떤 수단을 추가로 동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119를 부르지 않고 공장 자체 응급차량을 이용해 협력병원으로 이송시키는 기존의 관례가 문제 소지는 없을지 여론이나 법을 담당하는 임원들에게 문의하는 실행을 해봐야 한다. 문제가 있다는 전문 부서 의견이 있으면 이를 토대로 가능한 개선책을 마련해 그 결과를 매뉴얼에 개선 조항으로 삽입시켜야 한다.

이 모든 실질적 개선은 CEO가 훈련과 시뮬레이션에 참여할 때에야 가능하다. 이제라도 CEO가 먼저 나서 훈련 받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개선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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