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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의 역설, ‘선물’을 남기다[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공중보건 소통체계 바꿀 절호의 기회
승인 2015.10.08  09:18:31
김동석  | admin@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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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김동석] 사망자 36명, 확진자 186명, 관광손실 2조3000억, 경제손실 20~34조. 메르스(MERS-CoV, 중동호흡기증후군)가 남기고 간 상처다.

책임, 보상 등의 문제로 갈등과 후유증도 만만치 않은 상태지만, 메르스 바이러스는 상처와 함께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선물도 함께 주고 갔다.

   
▲ 중앙메르스 방역대책본부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메르스 사태 이후 최근 의료계에는 다양하고 혁신적인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후속 대책’을 내놓으며 응급실 시설 개선을 포함한 병원 인프라 확충에 500여억원, 메르스 백신 개발에 410억원 등 5년 간 총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메르스 확산이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현상 등 개별 병원 차원의 문제가 아닌 한국 의료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했던 현상임에도 삼성서울병원은 가장 많은 감염자(86명)가 발생했다는 오명을 쓰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어쩌면 이런 아픔을 겪었기에 그렇지 않은 병원들보다 혁신에 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다른 병원보다 한발 앞서가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얻게 된 것 역시 메르스의 역설이 아닐까 싶다.

한국 의료 시스템 혁신의 촉매제

이화여자대학의료원은 더 나아가 대한민국 병원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행 국내 병원의 기준 병실은 6인실이다. 4인실 이상은 차액 부담이 상당해서 입원 환자들의 6인실 쟁탈전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노출된 것처럼 6인실 위주의 다인실 구조는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화의료원은 이런 고질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18년 하반기 마곡 지구에 개원하는 새 병원을 3인실 기준 병실로 꾸민다고 밝혔다.

   
▲ 이화의료원은 2018년 하반기 마곡 지구에 개원하는 새 병원을 기존 6인실 기준 병실에서 3인실로 바꿔 꾸민다.

기준 병실이 3인실이라는 것은 3인실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기존의 4~6인실과 비슷한 입원비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첫 시도다. 현재 국내 의료환경에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불가능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당장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의료 환경의 변화 추이에 따라 3인실 기준 병상도 1인실로 언제든 바꿀 수 있도록 가변 설계를 했다고 한다. 이미 중환자실은 모두 1인실로 설계돼 있다.

메르스와 같은 병원 내 바이러스 감염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응급의료센터 호흡기 환자 분리 진료 시스템 ▲응급의료센터 내 음압 격리실 설치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한 재실 시간 6시간 이내 제한 ▲호흡기 내과 분리 병동 운영 ▲최신의 음압격리 병동 설치 ▲병동 내 면회실 설치 ▲전 병원 간호 1등급 실현으로 간병부담 최소화 등의 혁신적 병원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머지않아 국내 병원에도 기준 병상 1인실, 감염 걱정 없는 그야말로 ‘환자들이 꿈꾸던 병원’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병원뿐 아니라 메르스는 사회 전반에 걸쳐 공중보건(pub­lic health) 위기대응에 소중한 교훈을 남기고 갔다.

사태 초기 보건당국의 병원명 비공개 원칙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관련기사: 메르스 초기, ‘심리적 방역’ 실패했다) 위기관리의 기본 중에 기본인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원칙을 보건당국이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왜 정부는 비공개를 선택했을까?

보건당국은 병원명, 감염지역, 개인신상을 공개하지 않고도 초기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가능한 국민에게 과도한 공포감을 주지 않고 조용히 퇴치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로 불확실성 줄어

결과적으로는 병원명 공개를 늦춘 것이 메르스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로 지목되고 있지만, 만약 첫 순간부터 병원명과 환자의 주거지, 신상 등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동안 선례가 없었고 사회적 합의도 없었던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감염 당사자, 해당 병원, 지역사회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언론 역시 바이러스 하나에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거나, 과잉 공포를 조장한다며 거꾸로 병원명과 환자신상 공개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을 수도 있다.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감염이 확산되자 병원명 공개는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 됐고,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일종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앞으로 비슷한 사태에서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 외에 다른 선택을 고민하거나 우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는 공중보건 위기관리에 중요한 발전임에 틀림없다. (관련기사: 메르스가 남긴 세 가지 키워드, ‘가이드라인·리더십·민간전문가’)

사회 구성원은 메르스를 통해 공중보건 위기가 감염자나 해당 병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바로 나에게 직접적 피해가 돌아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사람만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경제도 죽일 수 있고 나의 일자리도 줄일 수 있으며 일상의 행복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구성원 각자의 협력으로 함께 퇴치하는 것이라는 소중한 교훈도 얻었다. 아프지만 고맙고 절실한 메르스의 교훈이다.

   
▲ 정부가 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안 일부./사진:보건복지부

그렇다면 위기 소통(위기 커뮤니케이션)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완벽한 변화는 아니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로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도, 국민의 협력도, 언론의 자세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질병관리본부 내에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담팀’이 따로 꾸려진다는 논의가 있다. (관련기사: 정부의 메르스 후속 대책, “역량 없다면 외부서 끌어와야”) 성공적인 위기관리는 위기 발생 전 관계 관리를 통한 신뢰 확보와 위기에 대한 사전 대비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위기 발생 상황에만 초점을 맞춘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담팀’보다는, 관련 질병과 해당 기관의 활동에 대해 평상 시 국민들과 통합적으로 소통할 질병관리본부 내에 ‘통합 커뮤니케이션팀’이 절실하다.

수년 간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석·박사급 커뮤니케이션 전문 인력들이 이미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이들에게 합당한 지위, 권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등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항상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공중보건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 정도의 관심을 갖게 된 것만 해도 큰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위기 시 ‘통합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초기부터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헬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통해 공중보건 위기 시 신속하고 정확한 SNS 모니터링 체계 구축 작업 역시 진행되고 있다. 대언론 관계를 넘어서 위기 시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점 역시 고무적이다.

큰 희생을 치른 후 메르스가 남기고 간 소중한 선물들. 이 선물들이 자칫 그대로 휴지통에 버려지고 과거를 답습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함께 노력할 때다.

   

 

김동석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 헬스(Enzaim Health)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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