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익명 SNS’ 뜬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익명 SNS’ 뜬다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5.08.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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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할 이야기, 모씨들에 털어놓으며 ‘힐링’

[더피알=조성미 기자]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유명 SNS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SNS를 통해 엿보는 타인의 행복한 삶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급기야 우울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명 중 1명은 SNS상에서 ‘자랑질 콘텐츠’가 70~80%에 이른다고 말했으며(20.3%), 전체 게시글 중 과시와 허세가 섞인 콘텐츠 또한 평균 53.5%를 차지했다.

또한 SNS를 통해 본 타인의 삶은 ‘즐겁다’(36.4%) ‘행복하다’(18.3%) ‘여유롭다’(16.7%) ‘능력 있다’(10.4%) ‘바쁘다’(5.6%) ‘부유하다’(4.6%) 등 긍정 일색이었으며, SNS의 주된 기능이 ‘행복한 삶을 알리는 매체’(22.8%)라고 조사됐다.

이렇게 SNS가 타인의 행복한 삶을 보는 채널로 여겨지며 ‘꾸밈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실제 <중앙일보>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33.9%의 사람들은 SNS를 통해 ‘기쁨·행복을 과장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53.8%)’ 본인의 감정을 과장한다는 것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쌓고 이어가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의미가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페이스북)’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다(인스타그램)’ ‘내 아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카카오스토리)’ 등과 같이 ‘자랑’의 수단으로 변한 현재, 다른 한편에선 사람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익명 SNS’가 떠오르고 있다.

익명 SNS는 말 그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다. 사실 익명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꾸준히 있어왔다. 같은 대학이나 회사, 동종직군의 사람들이 모이는 OO대나무숲이나 블라인드 등은 여전히 많은 사용자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야기되는 주제가 주로 조직에 대한 불만이라면, 최근 떠오르는 익명 SNS는 자유롭게 자신의 고민이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사적이다. 현재 ‘두리번’ ‘센티’ ‘어라운드’ ‘모씨’ 등의 앱이 운영되는데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이 겪은 재미있는 일들이 공유된다.

이 가운데 김 모씨, 이 모씨처럼 ‘아무개를 높여 부르는 말’이란 이름의 익명 SNS 모씨는 ‘당신을 아무도 모르는 공간’을 표방한다. ‘익명을 통한 진실의 공간’이라는 비전에 따라 익명 서비스로 탄생한 모씨는 지난해 11월 1일에 오픈해 현재 8개월여의 기간 동안 150만명의 모씨와 함께하고 있다.

▲ 모씨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이야기들.

모씨는 모든 대화는 이미지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 카드를 기반으로 시작된다. 이를 통해 글을 쓸 때의 집중도를 높여주고,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해 자신의 생각을 보다 쉽게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씨를 개발한 김봉기 대표는 “모씨에서는 성별, 연령, 배경, 직업에 관계없이 모두가 같으며 오직 자신이 한 발언으로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며 “이러한 말을 한 사람에 대한 궁금함, 그리고 익명이 가지는 극단적인 가벼움과 무거움 속에서 재미를 느낀다”라고 익명 SNS에 높은 관심이 생긴 이유를 설명했다.

이같은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정낙원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익명의 온라인 대화 서비스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거나, 자아의 틀을 벗어나 일탈행위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용하게 된다”고 바라봤다.

정 교수는 “익명적 속성을 지닌 온라인 환경에서 사람들은 기존에 있는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거나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려 하기도 한다”며 “동시에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자아에서 탈피하고(탈개인화) 탈규범적 행위 또는 일탈 행위를 시도함으로써 쾌감을 얻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한상기 소셜컴퓨팅 연구소장은 SNS 정보공개와 그로 인한 피로도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했다. 그는 “현재의 SNS들은 운영 주체들이 마케팅을 위해 개인정보를 요구함에 따라 익명이 아닌 것이 됐지만, 과거 온라인 세상은 익명으로 시작했다”며 “특히 내가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나의 이야기가 공개된다는 실명의 피로도와 온라인에서 또 다른 자아를 추구하려는 욕구, 나의 모습을 하나로 규정짓는 것에 대한 거부 그리고 나의 특수성 때문에 나를 숨겨야 하는 것 등의 요인으로 익명성에 대한 선호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관계

모씨와 어라운드 등은 익명 SNS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창구가 되고 있다. 익명이라는 원래 정체성과 별개로 각각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공유하고 있는 것.

실제로 모씨에서 작성된 글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되는 것은 하루 400~500건에 달한다. 어라운드 역시 ‘진심엽서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앱을 이용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봉기 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한 게시도 모씨들의 요구로 이뤄졌는데, 자신의 비밀을 남들과 공유할 때 묘한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냥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 자유를 느끼고,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를 함으로써 오히려 치유와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 인스타그램에서 #달콤창고로 검색된 이미지.

한 발 더 나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오프라인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기회도 만들어지고 있다. 유학을 준비하던 한 이용자가 어라운드를 통해 힘을 준 이들에게 감사 의미로 자신이 사용하던 강남역 사물함에 간식을 채워두면서 시작된 ‘달콤창고’는 팍팍한 일상 속 낯선 이의 위로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후 여러 이용자들이 각자 공간인 대학교나 도서관, 지하철 역사 내 사물함에 간식을 넣고 위치와 함께 비밀번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누군가가 간식을 가져가고 또 채워놓고 때로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손편지 등을 넣어두면서 달콤창고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한 이용자의 재능기부로 달콤창고 지도인 ‘달콤지도’까지 탄생하는 등 서로에 대한 배려를 바탕에 둔 참여와 노력으로 새로운 문화로 이어지는 중이다.

좋은 취지의 익명성이지만 정체를 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들도 있다. 무책임한 말이나 폭력적인 말, 상대를 공격하는 비난에 대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보다 먼저 익명 앱이 활성화됐던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학교와 지역 단위 중심의 익명 앱 이크야크(yikyak)는 사이버왕따의 온상이 되며 논란의 중심에 있고, 한때 3500만달러(한화 약 373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던 시크릿은 사적인 상세 정보로 인기를 얻었지만 욕설과 폭력적 내용으로 몸살을 앓으며 끝내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낙원 교수는 “시크릿 창업자 데이비드 비토우(David Byttow)는 사업 초기엔 사람들의 정직, 열린 대화, 창의적 표현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익명성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곧 실패였음을 인정했다”며 “결국 규제 없는 익명적 환경은 필연적으로 욕설, 인신공격, 명예훼손, 저질의 성적 콘텐츠 등으로 금방 더러워 질것이고, 이용자들은 이를 떠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이 ‘비수’로 날아들지 않으려면…

한상기 소장은 “과거의 온라인 문화는 모두 익명을 기반으로 했지만, 충분히 수준 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며 훌륭한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며 “문제는 익명성이 아니라,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커뮤니티의 장은 규칙을 정하고 또 참여자들은 이를 잘 지키고 어기는 사람들에게는 합당한 제재를 가하면서 끊임없는 관리와 운영이 이뤄진다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충분히 깨끗한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현재의 익명 SNS는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청정’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선 힐링앱으로 꼽히는 어라운드 역시 모든 이들이 편안함을 느낄 권리가 있고 서로 믿음과 관점이 다를 수 있기에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며, ‘특정인을 지목하지 마십시오’ ‘익명성을 해치지 마세요’ ‘불쾌한 사람이 되지 마세요’ 등 의미 있고 진실 되게 사용하기 위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모씨는 금칙어 필터링이나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이 쓴 카드가 노출이 안 되는 ‘블라인드’ 제도 등 장치들을 계속적으로 고도화하며 익명성을 무기로 발생가능한 문제점을 예방해 나가고 있다.

김봉기 대표는 “(익명으로 인한) 문제는 통계적으로 1% 수준이지만 모씨가 가장 집중 관리하는 부분”이라며 “기본적으로 모씨들의 신고로 이뤄지며 운영에서도 별도의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를 하고 있다. 특히 자살, 청소년 문제(왕따), 성폭력 피해 사례도 관찰되어 이를 모니터링 함과 동시에 보다 전문적인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 SNS는 자신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익명이라는 특성이 한계로 작용해 성장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정낙원 교수는 “소셜미디어란 어느 정도의 자아정체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 이를 유지·강화시키는 기능으로 이러한 관계 안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동시적 커뮤니케이션과 접근성을 강화시켜주는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이다”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익명 SNS를 소셜미디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어 “익명의 SNS에서는 관계망 안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고, 매우 무작위적인 대화이기 때문에 단순히 익명 메신저라고 봐야 할 것”이라며 “익명의 환경에서도 관계가 형성될 수 있으나 매우 허약하고 무너지기 쉽다”는 견해를 전했다.

이런 이유에서 전문가는 익명 SNS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한상기 소장은 “현재 거대 기업들이 실명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는 SNS가 크게 성장한 가운데 익명 SNS가 이들과 같은 메이저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사람들에겐 지금 만들어둔 관계, 실제 사람을 알아가는 공간에서의 재미와 숨어서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재미가 공존하기 때문에 독특한 문화, 특정한 영역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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