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성추행·성희롱, 커뮤니케이션 해법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성추행·성희롱, 커뮤니케이션 해법은?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8.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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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핥기식 교육 실효성 떨어져…공감결여, 정상적 소통 가로막아

커뮤니케이션은 상호이해와 존중을 기본으로 한다. 이에 비춰 보면 성희롱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타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성적욕망을 일방적으로 표현하거나 상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언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이 쉽사리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공감결여와 미성숙한 조직문화, 그리고 겉핥기식 교육에 있다.

[더피알=문용필 기자] 서울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불거진 성추행 의혹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여당 소속이었던 모 국회의원은 성폭행 의혹에 휩싸여 탈당했다. 잊을만 하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는 성추문들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뿌리 깊은 사회문제다. 성희롱도 예외는 아니다.

#. 20대 후반 여성 김 모씨는 얼마 전 대기업에 입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재색까지 겸비한 그녀지만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회식에 참석하면 치근덕거리는 30대 후반의 남성 과장 때문에 괴롭다는 것. “몸매가 죽인다” “입술이 예뻐서 뽀뽀하고 싶다” 등의 말은 기본이고 노래방에 가면 블루스를 추자고 해 거절하느라 진이 빠질 정도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오늘밤 나와 같이 있자”는 말까지 들었다. 김 씨는 회식뿐만 아니라 출근도 두렵다.

#. 30대 초반의 남성 윤 모 대리는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해 상사들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40대 여성 부장의 애정표현은 지나칠 정도다. 다른 동료들 앞에서 엉덩이를 툭툭 치거나 볼을 꼬집는 일이 다반사다. 용기를 내서 “그만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남동생 같아서 그러는데 왜 그러냐” “남자가 뭘 그런 걸 갖고”라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뿐이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상으로 꾸며본 성희롱 사례다. 결코 허구만은 아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어느 회사, 어느 공공기관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조직 외부로 문제가 불거지면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공분을 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성희롱의 개념을 법률상에 명시해놓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 2조는 사업주나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언동 등으로 굴욕감, 혹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라고 직장 내 성희롱을 정의하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학교 내 성희롱의 경우에는 ‘양성평등기본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성희롱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언어적 성희롱과 신체적 성희롱, 그리고 시각적 성희롱이 그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9월 발간한 <사업주를 위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가이드북>에 따르면 언어적 성희롱에는 음란한 농담, 외모에 대한 성적비유나 평가, 성적인 내용이 담긴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자신의 부부생활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달하는 것도 언어적 성희롱으로 볼 수 있다.

육체적 성희롱은 말 그대로 신체적 접촉이나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다. 안마를 해준다며 어깨를 터치하거나 뒤에서 껴안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시각적 성희롱의 경우, 음란한 사진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를 고의적으로 만지는 행위, 상대가 원치 않는 윙크를 계속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이 세 가지 범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원하지 않는 데이트나 교제를 강요하거나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제기하거나 거절의 의사를 표시해 불이익을 주는 것도 성희롱에 포함된다.

예방교육 법제화됐지만 ‘겉핥기식’ 태반

성희롱 문제는 지난 1993년 불거진 이른바 ‘서울대 우조교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의제로 표면화됐다. 당시 서울대에 재직중이던 우 모 조교가 같은 학과의 신 모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그를 고발한 사건이다.

이후 관련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직장 내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성희롱 방지를 위한 각종 장치들이 마련됐지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 자료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성희롱 시정권고사례집 제 6집(2014)

성희롱에 대한 세간의 낮은 인식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2년 공공기관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50.2%가 우리사회의 성희롱 실태가 심각하다고 평가했지만 정작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 내 성희롱이 심각하다고 답한 이는 3.2%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가에 진정되는 성희롱 사건은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 제 6집>에 따르면 인권위에 진정되는 성희롱 사건 접수 건수는 2008년 152건에서 2010년 210건, 2013년 240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그렇다면 성희롱이 좀처럼 우리사회에서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각 조직에서 실시하는 성희롱 방지 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김인숙 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내용이 부실하거나 실질적으로 기대하는 만큼의 교육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도 “성희롱 예방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말 들어야 할 사람이 안 듣는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하위직급의 여성들이 교육을 받는다. 앞으로 일정 직급 이상은 남녀를 불문하고 반드시 들어야 한다. 남녀문제가 아닌 철저한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해야 한다. 각급 학교를 포함한 공공기관 역시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도록 양성평등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 성희롱 예방강사인 박윤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고용평등상담실장은 “조직문화를 다루지 않고 직장 내 성희롱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 이를 성인지(性認知)적인 관점이나 감수성 측면에서 겉핥기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주제 문제를 다루지 않고 형식적으로 끝나는 교육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점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상대방을 바라보는 공감의 결여다. 이는 결국 성희롱 방지를 위한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 된다.

김인숙 교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되려면 이슈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성희롱의 경우 이것이 부족하다”며 “행위자(가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박윤진 실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남녀의 차이를 동등한 가치로 보지 않고 특정 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분명 존재한다”며 “이는 이성 간 커뮤니케이션의 장애요소”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이에 대한 인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행위자들은 ‘친밀감의 표시’라고 말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는 상대방이 느끼는 친밀감이 아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성희롱이 발생한 후 행위자의 소통방식은 그야말로 변명 혹은 발뺌 일색이다.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할 경우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기려 한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경우도 적지않다.

그러나 발뺌이나 변명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박 실장은 “성희롱 피해자들은 상대방의 진정한 사과를 제일 많이 원한다. 사과의 골든타임이 분명히 있다”며 “그런데 변명이나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면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과 불쾌감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에 (수치심의) 감정보다 더 커진 상태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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