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질병 되살려드립니다”
“잊혀진 질병 되살려드립니다”
  • 김동석 (dskim@enzaim.co.kr)
  • 승인 2015.04.07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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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결핵은 옛날병? 국민 인식부터 개선해야

[더피알=김동석]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앓는 병을 보면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병도 알 수 있다. 1980년 대 이전까지만 해도 결핵은 드라마 주인공의 ‘단골병’이었다. 기침을 하다 장중한 효과음과 함께 손수건에 묻어 나오는 붉은 각혈을 확인하고 놀라는 모습은 TV나 영화에서 흔하게 보던 장면이다.

이어 90년대까지는 백혈병의 시대였다. 많은 비련의 여주인공들이 백혈병으로 초췌하게 생을 마감하곤 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암(癌)에 걸린 주인공들이 유독 많았다. “3개월 남았습니다”는 의사의 선고는 유행어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그 자리를 ‘치매’와 ‘희귀난치성질환’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대표질병으로 화려한(?) 시대를 보낸 ‘결핵’은 어떨까? 결핵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가치가 사라져가고 있지만, 불행히도 현재 우리 생활에는 여전히 큰 위협으로 남아있다.

▲ 결핵은 ‘과거의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20~30대 젊은층 환자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사진: 결핵 예방 tv 공익광고의 한 장면.

진화하는 결핵, 국민 3명 중 1명이 ‘잠복환자’

대부분의 중장년층들은 결핵이 가난한 사람이 걸리는 옛날 병으로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낼 때 우표와 함께 붙이던 과거 ‘크리스마스실’의 추억 정도로 남아 있거나, 이미 부유해진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발생하는 후진국병 쯤으로 여길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결핵(2012년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한해 860만명이 감염되고, 이중 130만명이 사망하고 있는 위험한 감염병이다. 결핵균은 지속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다제내성결핵’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상황 역시 좋지 않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결핵 발병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87명으로 OECD 평균 17.7명과 비교해 단연 1위다. 무려 국민 3명 중 1명이 잠복결핵환자라는 통계도 있다. 잠복결핵은 결핵에 감염돼 체내에 소수의 살아있는 균이 존재하지만 외부로 배출되지 않아, 타인에 전파되지 않고 증상이 없는 상태로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지게 되면 활동성 결핵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보건당국의 노력으로 과거에 비해 국내 결핵 환자 수는 꾸준히 줄고 있다. 문제는 전체 결핵 발병환자 중 20~30대 결핵환자의 비율이 특별히 높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결핵이 젊은층에 많이 발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기침예절은 결핵예방의 핵심이다. 사진: 질병관리본부에서 진행하는 기침예절 캠페인 포스터.
아직 임상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생과 직장인들의 과도한 다이어트, 학업 및 업무 스트레스, 과로, 집단생활 등이 젊은층 결핵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어릴 때 맞은 결핵예방접종(BCG)의 효과가 보통 10~15년 정도 지속돼 20~30대에 다시 한 번 결핵에 취약한 시기를 맞게 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결핵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한 상태다. 2014년 대국민 결핵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결핵 심각성 인식’이 34.4%에 그쳤다. ‘결핵검진의지’와 ‘치료의지’ 역시 각각 44.5%, 54.6%로 절반 수준이었다. 편견과 몰이해가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결핵의 예방과 치료를 통해 ‘결핵 ZERO’ 목표를 달성하고자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역할과 메시지는 ‘기침’에 집중하고 있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한 공기매개 감염질환이기 때문에 예방과 진단에 기침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침예절’은 결핵예방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감염성 질환이 그런 것처럼 결핵도 손씻기와 기침예절만으로도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기침을 할 때 포말은 시속 약 160km 속도로 주위에 퍼져나간다. 이때 포말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기침이나 재채기 예절이 필요하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손이 아닌 휴지, 손수건,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해야 하며, 기침 후에는 흐르는 물에 비누로 손을 씻는 등 주의사항을 실천해야 한다. 특히 손으로 기침을 막기 보다는 팔꿈치 부분의 깊은 소매에 입과 코를 대고 기침을 하는 것이 포말 확산을 최소화 할 수 있어 이같은 소매기침 생활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결핵의 진단 역시 기침과 관련이 있다. 결핵의 가장 흔한 증상인 기침은 감기로 오인하고 지나치기 쉽다. 결핵기침은 다른 기침과 달리 2~3주 이상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2주 이상 지속되는 기침, 결핵을 의심해 보세요”라는 핵심 메시지 노출이 어떤 화려하고 세련된 표현보다 중요하다.

▲ 질병관리본부의 결핵 예방 캐릭터 ‘뿌결이’가 소매기침 방법을 알려준다.
옛날 병? 요즘 병!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예방차원을 넘어 적극적·선제적 결핵 퇴치에 나선다고 밝혔다. 실질적 검진활동으로 감염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다. 특히 중·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오랜 시간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또래 집단 내 결핵전파에 취약하다. 이미 시범사업을 마치고 올해는 고등학생 결핵검진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검진을 통해 숨어 있는 환자를 발굴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결핵기침의 확산을 막는다는 전략이다.

그 동안 결핵은 ‘과거의 병’, ‘후진국 병’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이를 커뮤니케이션에서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결핵은 더 이상 과거의 병이 아니다. 못 먹어서 걸린다기보다 다이어트, 스트레스 등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잘 걸리는 ‘현대병’이다.

결핵균 역시 옛날의 균이 아니다. 결핵균은 다제내성결핵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결핵균은 진화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결핵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결핵=과거의 병’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결핵=현대의 병’으로 인식을 달리 해야 한다. 그래야 결핵이 나에게도 쉽게 발병할 수 있는, 지금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질병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브랜드를 되살리듯 잊혀진 질병 결핵을 다시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되살리는 것, 그것이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다.

김동석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 헬스(Enzaim Health)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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