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이 되느냐, 유리턱이 되느냐
챔피언이 되느냐, 유리턱이 되느냐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5.02.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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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지는 게임에서 보이는 공통적 내부 문제들

[더피알=정용민] ‘유리턱(Glass Jaw)’이라는 표현이 있다. 원래 권투경기에서 사용되는 속어라 한다. 덩치는 크고 싸움 잘하게 생겼지만 상대에게 한방 맞으면 어이 없이 나가떨어지는 선수를 유리턱이라 한다. 이 개념을 위기관리에 사용한 전문가가 있는데, 미국에서 위기관리 펌(firm)을 하고 있는 에릭 데젠홀(Eric Dezenhall)이다. 2014년에 <Glass Jaw>라고 이름 붙인 책을 냈다.

우리 기업들을 바라보면 최근 위기관리에 있어 ‘유리턱’ 현상이 종종 눈에 띈다. 크고 위대해 보이던 회사들이 ‘녹취’ 한방에, ‘소송’ 한방에, ‘몰래카메라’ 한방에, ‘VIP의 어떤 행위’ 한 번에 그로기(권투에서 선수가 심한 타격을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 상태에 빠져 링 위에 나가떨어지고 있다.

이런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니…저렇게 큰 회사가 어떻게 저리 무력할 수 있지?”


우리기업도 혹시?! 역시?!

기업이고 개인이고 이런 유리턱들은 공통적 내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신의 덩치와 맷집을 혼동한다. 큰 덩치를 믿고 어떤 위기도 만만해 하고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다 평소 자신 있어 한다. 일부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둘째, 자신의 약점을 평소 잘 모른다. 유리턱은 실제 경기에 나가 펀치를 맞아보기 전에는 자신이 유리턱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어느 부위를 맞으면 바로 링 위에 누울 수도 있다 하는 약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셋째, 유리턱들은 평소 자신의 약점을 강화하거나 보호하는 훈련도 하지 않는다. 어디가 약한지 모르니 커버할 부분도 경기 때 잘 모른다. 약한 부분을 평소 단련해 맷집을 키우거나 정상화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넷째, 일부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유리턱들은 항상 조마조마해 한다. 경쟁사가 특정 위기에 휩싸이면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면서도 유리턱에서 벗어날 노력은 하지 않는다. 경쟁사가 경기에 나가 링 위에 누운 것을 보며 ‘경기가 빨리 끝나기를’ 기도한다.

다섯째, 모든 유리턱은 경기 시작 후 금방 쓰러져 재기하지 못한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누워만 있다. 경기 중 다시 일어서 싸울 용기나 체력이나 가능한 펀치가 없다. 일종의 자포자기다.

이런 문제들을 가진 유리턱들에게는 아쉽게도 경기장 위의 ‘위기관리 환경’도 예전처럼 만만치 않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 보아도 경기의 룰이나 펀치의 강도와 빈도들이 전혀 달라진 거다.

유리턱이 되는 위험요소들

최근 유리턱 기업들을 양산해 내는 외부 위기관리 환경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온라인+소셜미디어+모바일+오프라인미디어(전통적인 매스미디어)X이해관계자들. (이해관계자들 앞에 달린 ‘곱하기’에 주목하자!) 일명 ‘죽음의 칵테일’로 불리는 강력한 적이 생겼다. 20~30년 전 종이신문 몇 개와 싸우던 기업 홍보실을 추억해 보면 후배들은 무척 부러울 것이다. 현재는 위기가 발생하면 모니터링하기도 벅차다. 대응 이전에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다. 통제? 관리? 대응?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둘째,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 위기의 스피드다. 예전에는 일간지 마감 시간에 맞춘 위기대응이 기본이었다. 문제 발생 후 회의 집합, 논의, 결정, 실행 준비 등 일정 대응준비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사고 직후 불과 10분이면 수많은 현장 사진들이 트위터와 온라인에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홍보임원이 위기관리위원회에 참석하기 전 대부분의 초기 상황은 프레임이 잡혀버린다. 홍보라인이나 직원들을 통한 정보라인보다 훨씬 더 빠르고 많은 정보 소스들이 온·오프라인에 널려 있다. 그 속도를 당할 수가 없다.

셋째, 기업 위기는 어떤 이들의 ‘식권(meal ticket)’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밥을 벌기 위해 위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각종 소비자단체, 온·오프라인 언론들, 피케팅 하는 사람들, 소송을 남발하는 이들, 공중을 자극하는 활동가들을 보자. 온라인과 SNS에도 기업을 항상 욕할 준비가 돼있는 수많은 온라인 공중들이 실재한다. 그들 대부분은 상당 수준 훈련 받았고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기업 위기관리팀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중장기 공격 전략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 언론, 법 그리고 규제기관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한다. 준비 없이 대응 하다가는 한방에 유리턱이 된다.

넷째, 여론 정서법. 사회적 성숙도가 상당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되다가도, 어떤 때 보면 공중들은 마치 유치원 아이들처럼 유치할 때가 있다. 일부 정보에 부화뇌동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증거나 반론을 제시해도 잘 이해도 못한다. 금방 끓다가 가라앉는 양은냄비 같은 여론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 대한 비판과 하소연 이전에 무언가는 해서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유리턱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규제기관들의 극대화된 여론 민감도다.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에게 기업의 위기들은 그 자체로 골칫거리가 돼가고 있다. 그냥 단순 사건 사고로 그친다면 그리 큰 문제가 없지만, 이게 사회적 논란과 연결되면 다른 문제가 된다. 비판을 받으면서 사회적 참극을 빚어내고 공분(public angry)을 만드는 기업의 대형 위기에는 항상 정치권과 규제기관이 개입하게 됐다. 정치권과 규제기관이 동시에 들이닥치면 그 직후부터 기업의 위기관리 리더십은 그쪽으로 넘어가 버린다. 유리턱들은 저항조차 불가능해진다.

유리턱들은 내외부적으로 실제 환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준비가 평소 없는 것이 문제다. 무사히 경기를 치러내려면 그만큼 기업은 빨라야 한다. 훈련돼 있어야 한다. 경험도 많아야 한다. 체력과 판단력은 당연하다.

위기관리 리더십이란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을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이 평소에 챙기고, 키우고, 유지시키는 노력들이 바로 위기관리 리더십이다. 챔피언이 되느냐? 유리턱이 되느냐? 이 모든 것은 위기관리 리더십에 따라 갈린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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